할머님을 찾아 소록도에 가다
할머님을 찾아 소록도에 가다
  • 오문수
  • 승인 2006.10.0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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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형(天刑), 모진 운명 살다가신 분, 영면하시길...
초등학교 때 일이다.

"문뎅아(문둥아)! 문뎅아(문둥아)!"
"너 죽을래?"

다른 장난은 괜찮았는데 이 소리는 정말 싫었다. 왜냐하면 이웃마을에는 나병환자들이 살면서 동냥을 다녔는데 "문둥이가 온다"는 소리는 울던 애기가 겁낼 정도로 무시무시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문둥이들이 어린아이의 간을 빼 먹으면 낫기 때문에 애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때는 다만 내 이름 가운데 '문'자가 들어있어서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다.

▲ 모진 운명을 종교에 귀의하여 할머니가 다녔을 소록도 교회
군입대를 앞둔 어느날 누나가 나를 불렀다.
"이리 앉아봐라. 너 할머니가 살아계셨던 사실 아니?"

웬 뚱딴지 같은 소리.

아버지는 9살 때 고아가 되어 남의 집에 머슴살다가 어머니와 결혼했기 때문에 가까운 동네에는 4촌 이내 친척이 없다고 하셨다. 있다면 남원에 사는 이모가 전부였다.

"실은 너 어렸을 때까지 할머니가 살아계셨는데 너희들에게 충격 주지 않으려고 이 사실을 숨겨왔단다. 할머니가 고흥 소록도에 나병환자로 살아계시다가 네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

▲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거세시키는 수술대인 '단종대'
충격이었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친구들이 나를 그렇게 놀렸구나. 다른 친구들은 자기 부모님께 들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어릴적 아버지께서 이틀쯤 집을 비운날, 어디가셨느냐고 물으면 식구들은 고흥 친척집에 갔다고만 하셨다. '가까운 동네에도 친척이 없는데 웬 고흥까지'하고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할머니께서는 손가락과 눈썹만 없고 다른데는 그래도 괜찮았으며 인자한 모습이셨다고 했다. 76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끝까지 말씀 안하시고 돌아가셨다. 젊었을 때는 고왔다는 어머니가 지금은 83세로 살이 여위고 등도 약간 굽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효도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소록도에 있는 할머니 묘소에 술이나 따라 드리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하셨다.

▲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자식들과 부모를 양쪽으로 격리시킨채 얼굴만 마주보고 절규하며 탄식하는 수탄장
"할머니 병을 아신 상태에서 결혼하셨냐"고 여쭤봤더니 "몰랐지만 그땐 하도 배가 고프고 못먹어서 이웃집에서도 몇 명이나 나병에 걸려 소나무에 목을 매 자살하기도 하고 소록도에 수용되기도 해서 큰 흉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셨다.

'천형(天刑)'.

나병이 현재는 약물치료가 가능한 전염병에 불과하다고 알려졌지만 일제당시에는 전염성 질환으로 알려져 격리 수용되었다. 피부와 말초신경에 주 병변을 일으켜 치료가 되어도 얼굴과 손발이 변형돼 일반인들이 가까이 다가가기에 쉽지 않은 병으로 가족들까지도 멀리하게 되는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고 알려졌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약 600m만 가면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가 나온다. 차에서 내려 도보로 가야하지만 노쇠한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어머니께 술이나 한잔 따라드리고 싶어 멀리서 오셨다는 하소연에 병원까지만 모시고 가라는 허락을 받았다.

▲ 할머니 묘소에 술잔을 올리는 어머니
수탄장(탄식의 장) 앞에 섰다. 전염될까 두려워 직원들이 강제로 양편으로 갈라서게 하여 눈물로 "아들아!" "어머니!"를 부르고 있는 저 사진속에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절규하지는 않고 있는지. 사진속에서 내 뿌리를 찾으며 가슴속에서 뭔가가 올라왔다.

병원에 도착해 할머니 인적 사항이 적힌 호적등본을 주니 너무 오래된 자료라 찾기가 쉽지 않단다. 그래도 아는 분이 직원들을 동원하여 여러 권의 장부 속에서 40여년 전의 할머니를 찾아냈다. 누렇게 퇴색된 종이에 씌여진 할머니의 이름. 그동안 우리집에서는 아버지를 제외한 누구도 알지 못한 실종된 이름이다.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아버지와 큰 형님께서 다녀오셨는데도 동생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직원의 인도하에 납골당으로 갔다. 돌아가시면 10년간 모시다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합장을 했단다. 결혼 후 꼭 두 번 밖에 보지 못했다는 어머니가 묘소에 절을 하고 술잔을 따르며 목소리가 떨렸다.

"어머니 묘소에 술 한 잔 올리러 멀리서 왔응깨 받으시고 이제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할머니는 결혼 10년 만에 남편을 잃고 9살 큰아들은 머슴으로 보냈고 6살 난 둘째는 친척집에 맡겼으나 물에 빠져 변을 당하고, 당신은 천형을 앓고 살았으니 한의 세월을 사신 것이다.

▲ 지상에 미련을 못버리고 승천하는 할머니 모습 -조카 진경이가 그려줬다.

병원을 나서며 지난 연말 울분과 증오로 번민의 날을 보내다 할머니의 지혜를 빌리기 위해 아끼는 후배와 함께 겨울 바다여행을 했던 해수욕장에 들렀다.

"할머니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이 분노와 증오를 어떡할까요?"
"이 나라에 정의는 살아 있는가요?"

"승진이 뭐 대수냐? 난 내 몸 하나 건강하게 나아서 이 섬을 나가는 게 소원이었다"는 할머니의 음성을 들으며 내 마음의 갈피를 잡았던 곳이다. 3대가 서로 다른 의미로 피눈물을 흘렸던 소록도도 이제는 연륙교가 완공되면 언제든지 내왕할 수 있는 곳이 된다. 현재까지는 배편으로만 다니고 어느 정도 통제된 곳이었지만, 자유롭게 왕래할 땐 그들이 눈요기 거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 나환자가 어머니한테 "우리는 사람노릇 못했으니까 사람도 아니여"라고 말한 얘기가 귀에 쟁쟁하다. 차의 왕래가 잦다고 그들의 눈에 눈물 마를 날 있을까?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첩경이다.

▲ 머지않아 완공될 연륙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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