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턱에 벗을 그리며
가을 문턱에 벗을 그리며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9.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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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고한석 <논설위원>
숨이 턱턱 막히도록 뜨겁게 대지를 달구었던 예년에 없던 땡볕여름이 물러가고 절기상 추분에 접어들자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옷매무새를 추스르게 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정서도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은 비단 소시 적 감상만은 아닐 터이다.

팍팍한 삶에 고단한 서민들이나, 넘쳐나는 재물을 감당 못하는 부자들이나, 깡마른 체구가 됐든 배불뚝이 비만 인이 됐든 남자든 여자든 빈부귀천을 떠나 고즈넉한 한밤에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물큰 치솟는 감정이 있으니 오래 동안 소식이 끊긴 벗이 그리워지는 마음이다.

때를 맞춰 <옛 사람들의 사귐>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한권이 나왔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 홀연히 잠에 든 재 / 시문건폐성에 반가운 벗 오는고야 / 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탁주 먼저 내어라”

벗을 기다려 찾아오면 거문고를 타리라는 조선후기에 발표된 시조 한 수를 서시(序詩)로 삼은 이 책은 책명도 <거문고 줄 꽂아 놓고>다. 국문학자 이승수 씨가 정감 넘치게 쓴 책이다.

고려 말·이조 초기 시대를 살다 간 24명의 걸출한 인물들 교우기록인데 이름만 들어도 친근감이 가는 사람들이다.

나옹화상과 이색, 정몽주와 정도전, 김시습과 남효은, 이황과 이이, 양사언과 휴정, 이항복과 이덕형, 허균과 매창, 김상헌과 최명길, 임경업과 이완, 이익과 안정복, 나빙과 박제가 등이 그들이다.

이들 면면을 살펴보면 전혀 사상과 가치관이 판이한 라이벌도 있고, 신분과 나이가 한참이나 달라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사제(師弟)지간이 벗으로 승화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 잔잔한,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우정의 감동이 이 가을에 더욱 벗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생각하면 벗을 사귐에 있어서 신분이나 나이 직업이 무슨 상관이랴!
인생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자신이 모른 바를 일깨워주고, 안타까운 점을 지적해주며, 모자란 부분을 채워준다면 그리고 격려마저 아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좋은 벗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에 성별은 차라리 거추장스럽기조차 하다.

그 사람됨을 알고자 하면 그의 벗이 누구인가를 알아보라는 터키 속담이 있다. 또 벗은 옛 벗이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속담이 있는데 오래 사귄 벗일수록 정의가 두텁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벗이 꼭 남일 수만은 없다. 그래서 형제는 ‘하늘이 내려주신 벗’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허지만 많은 벗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을 가질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처럼 아무나 벗이라고 외고 다니는 사람은 경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새겨 들여야 할 말은 에머슨의 경구다. 즉 벗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완전한 벗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스산한 찬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우리의 허허로운 가슴을 적셔줄 벗에게 지금 당장 전화를 해봄이 어떨까. 그리고 여유로우면 편지를 보내자. 더욱 여유로우면 거문고는 없더라도 순박한 가슴으로 벗 맞을 준비를 해봄도 좋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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