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전하는 땅 이야기
바람이 전하는 땅 이야기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7.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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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두번째 이야기 1]
율촌의 땅이름 유래로부터 시작된 여수의 땅이름 이야기 <마을편>이 지난 호의 삼산면 초도와 손죽도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번호부터는 여수지역의 산과 들과 바다에 산재한 다양한 땅이름이 관련된 주제별로 묶여 소개됩니다. 이어지는 여수지역의 땅이름이야기가 독자님의 지역사랑과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주


반도지형인 육지와 함께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우리 고장은 예로부터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많아 이와 관련된 땅이름이 많다.

바다와 터전으로 하는 생활은 기후와 바람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살아야하기에 바람과 관련된 땅이름도 자연스럽게 지어지게 되었다.

태풍과 비바람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요즘처럼 날씨와 바람의 변화가 심한 바닷가 사람들은 시련을 겪고 난 후 어떤 땅이름을 남겨놓았을까?

화양면 세포리 입구에는 <석개>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한자로 돌석(石)자와 개포(浦)를 써서 석포(石浦)라고도 하는데 석이라는 우리 고장말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돌이 많은 마을로 알려지고 있다.

본래 우리 고장말인 ‘석’이라는 말은 뱃사람들이 배를 피항 시키던 안전한 항구를 이르는 말이다.

초도 대동리의 ‘굴 석’, 삼산면 평도의 ‘하느바람 석’과 ‘굴 석’은? 지금도 <석>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는 곳으로 평소에는 마을 앞 항구에 정박하지만 폭풍우 시 이 곳으로 배를 옮겨 안전하게 피항하는 곳이다.

세포리의 석개 마을도 인근 굴개나 세포리의 배들이 안전하게 피항 하던 곳이었지만 간척지가 만들어지면서 그 기능을 잃게 되자 땅이름의 뜻도 점차 잃게 된 경우다.

바다에서의 폭풍우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여 사고와 관련된 땅이름을 많이 남기게 된다.

소라면 궁항마을 앞바다의 삼주암은 생활이 궁핍한 부부가 여자도로 돈을 벌러 나갔다 부자가 되어 돌아오는 길에 심한 폭풍우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는 곳이다.

화양면 가장리의 서른(서러운)바구, 거문도 등대 아래의 멍실여 등은 해초를 따던 처녀들이 폭풍우를 만나 목숨을 잃어 비바람이 심하게 치는 날이면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난다고 한다.

서러운 바위란 뜻과 물이 들어오는 것을 모르고 멍하니(멍) 있다가 목숨을 잃었다는(잃을 실-失) 뜻이다. 돌산 우두리 상하동의 ‘깽매기 통’ 도 남해의 농악대회에 참여하여 상을 받고 돌아오던 마을 농악단이 폭풍우에 배가 뒤집혀 사고를 당한 뒤에 생겨난 이름이다.

거문도의 <무넹이 목>은 폭풍우로 바닷물이 목을 넘었단 뜻이고 여자도의 본 이름 <넘자>는 섬의 산이 낮아서 바닷물이 산을 넘었다는 뜻이다.

삼산면 거문리의 하늘담과 샛담은 바람의 방향으로 마을의 이름을 정한 말이다. 샛바람이 부는 동쪽은 샛담, 하늬바람이 부는 서쪽은 하늘담이라 했다. 맞바람이 부는 남쪽은 <맞담>이나 <맞바람담>, <마파지> 또는 <맞다지>라 한다. 그래서 영화 마파도는 남풍이 부는 섬이다.

북풍이 부는 북쪽마을 이름도 있다. <높바람담>이나 <높다지>로 부른다. 이러한 땅이름은 삼산면이나 화정, 남면 등 주로 섬 지방에서 많이 나타나며 고흥이나 진도, 완도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다.

70~80으로 불리는 3~40 대 이상은 어린 시절 학교를 오가기 위해 꽤나 먼 거리를 걸어서 다녔던 사람이 많았다. 학교가 많지도 않았지만 오솔길이나 산길로 이어지는 학교 길은 드문드문 남아있는 하얀 눈과 매서운 바람이 당시의 변변치 못한 겨울옷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이겨내기엔 힘든 시련이었다.

그런 길에 꼭 맡는 땅이름이 바로 ‘눈물고개’란 이름이었다. 돌산 평사리와 작금마을, 율촌의 취적, 화양면 화동리 돌고개 아래는 지금도 눈물고개라는 그 시절 이름이 그대로 불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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