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도, 풀의 나라
초도, 풀의 나라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7.1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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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90] 삼산면 초도/손죽도
거문도 북쪽에 있는 초도(草島)는 이름 그대로 풀이 많은 <풀섬>이었다.
구미, 읍동, 읍포, 큰마을 등으로 불렀던 대동리는 초도에서 가장 큰 마을로 삼산면의 최고봉인 상산봉(339m)을 중심으로 지대가 완만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작은 섬에서는 보기 힘든 논농사를 짓는다.

1896년 돌산군 삼산면 시절에 ·구미리- 여산지에서는 <읍동>으로 표기하였으며 그 후에 큰 마을을 한자말로 바꿔서 <대동리>라 하였다.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사슴목>과 <예미>로 부르는 작은 마을이 있다.

초도의 북쪽마을인 의성리는 마을 공동묘지 부근의 <솜널이>란 지역의 바위부근에서? 철이 많이 나와서 한 때는 <이성금>이란 이름을 가졌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조선수군이 진을 쳐 <진막>이라 했다는 진막마을과 유래를 잘 모르는 <정강>마을, 고래가 많이 살았다는 <고라짐> 경촌마을이 있다.

손죽도의 손죽리는 조선시대에는 전라좌수영에 딸린 섬으로 1587년 청년장군 이대원 장군의 죽음으로 대원을 잃었다는 뜻의 손대도가 변해서 손죽도가 되었다고도 알려져 왔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중종 55년 기록에 손죽도에 왜구가 침입하여 물리친 기록이 등장하는 걸로 보아서 이대원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모여 전설이 되지 않았을까?

손죽도는 섬 안에 시누대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시누대 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손죽도가 되었다고도 전한다. 마을 입구에서 발견된 조개더미의 유물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이 섬을 근거지로 하는 대규모 선단이 형성되어 수십 척의 어선과 500호에 이르는 사람들이 부를 누리고 살았던 섬이다.

마을 뒷산에 있는 <지지미>라는 지역은 예부터 진달래가 피는 시절에는 화전인 지지미를 부쳐 먹으면서 놀이를 하던 화전놀이터의 이름이며 <손잡고돈디>, <독보듬고돈디>, <택걸이>, <진걸음>, <세걸수> 등 이름만으로도 그 의미가 짐작되는 우리말 땅이름들이 수없이 전해지는 땅이름 연구의 보물섬이다.

거커리로 불렸던 소거문도는 바로 곁의 작은 섬을 <잔-커리>라고 하며 거커리는 큰 마을이란 뜻의 땅이름이다. 거커리를 이두로 표현한 한자였던 거문도란 섬 이름을 거문도 사건 이후에 삼도 대신 거문도로 사용하게 되자 본래의 거문도를 소거문도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손죽도 가까이 있는 작은 섬인 광도(廣島)는 넓다는 의미인 <너푸리>로 불려지던 곳으로 한때는 풍수예언서의 길지라는 사림도(四林島)가 <너푸리>라고 하여 난리를 겪지 않는 섬으로 알려진 마을이다.

주변 바다는 하도 고기가 많이 잡혀서 <물 반 고기 반> 이라 하였다는 남해안의 중요한 어장이었으나 최근 해산자원의 고갈로 주민이 거의 떠난 빈 섬이 되었다. 광도와 가까운 평도는 섬의 모양이 평평하여 <평도>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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