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은 김유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
귤은 김유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7.0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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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89] 삼산면 유촌리/죽촌리
해발 247m의 망양산은 본래 망치산으로 불려오던 거문도의 가장 높은 산이다. 바람이 없는, 산 아래 서쪽해변으로 유촌(柚村)과 죽촌(竹村)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어있다.

유촌리는 예부터 마을에 유자나무가 많아 유자리(柚子里)나 귤정리(橘亭里)라 하다가 1914년부터 지금의 유촌리가 되었다. 역사의 섬으로 알려진 거문도에는 예로부터 이름있는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귤은 김유 선생의 일화가 가장 많이 알려지고 있다.

1814년생인 귤은 선생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전라도 장성땅에서 노사 기정진 선생의 학문에 감화되어 과거를 포기하고 문하생이 되었다고 한다.

노사의 학문을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온 귤은 선생은 고향에 낙영제를 세우고 수많은 후학을 배출하였고 말년에는 완도의 청산과 신지도 등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거문도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84년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귤은 선생이 남긴 해상기문에는 당시 세계의 열강이 앞 다투며 찾아오던 거문도의 외국인들과 나누었던 필담에 관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선생의 호인 귤은(橘隱)은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귤정리에 은거하였다는 뜻을 담고 있다.

1885년에서 1887년에 걸쳐 영국군이 무단으로 점령한 거문도 사건 후에는 마을에 거문진이 세워져 해상을 방비하다가 1895년 혁파되고 지금은 터만 전해온다.

유촌의 남쪽에 자리한 죽촌은 이름에 나타나듯이 대나무가 많은 마을이다. 예전에는 대촌 또는 대추 죽전(竹田), 죽림(竹林) 등으로 소개되던 마을로 유촌과 함께 거문도의 옛 주거문화가 잘 보존되어 전해온다.

자연이 준 가장 큰 선물인 뛰어난 풍경을 간직한 거문도는 고대로부터 중요한 해상교역로이면서 섬주변이 풍족한 어장이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사람이 머물기 시작했고 그 삶의 흔적들은 역사와 함께 전설이 되어 전해온다.

섬 주변에 많은 사연을 가진 동굴과 바위와 해변에 남겨진 사람이름의 땅이름들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솔순이 빠진굴, 멍실여, 용냉이, 신선바위, 아차바위, 신지끼, 고두리와 오도리영감 전설 등 사람의 흔적이 남긴 이야기는 밤을 세우기가 부족한 이야기들이며, 귤은 선생이 남긴 삼도 세 섬 사이 호수같은 바다위에 펼쳐지는 삼호팔경(三湖八景)의 시심이 솟는 아름다운 경치도 빼놓을 수 없는 거문도의 자랑이다.

<거문도의 삼호팔경(三湖八景)>
橘亭秋月(귤정추월) - 귤정(유촌리)에 비치는 가을 달빛.
竹林夜雨(죽림야우) - 죽촌의 밤 대나무 숲에 밤비 내리는 소리.
鹿門怒潮(녹문노조) - 서도 녹싸이(산) 끝의 수십 길 절벽아래 바람 부는 날의 성난 파도.
龍巒落照(용만낙조) - 용냉이 용물통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해넘이.
梨谷明沙(이곡명사) - 배골(서도리 남동쪽 해안)의 하얀 모래와 어우러진 삼호의 경치.
紅國漁化(홍국어화) - 불배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거문도 내해 밤바다 고기잡이.
石凜歸雲(석름귀운) - 안개 낀 기와집 몰랑과 신선 바위 부근의 풍경.
白島歸帆(백도귀범) - 백도에서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돛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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