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면 행정의 중심 ‘거문리’
삼산면 행정의 중심 ‘거문리’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6.20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종길의 땅이야기 87] 삼산면 거문리/덕촌리
거문도 관광선의 기착지이며 삼산면의 소재지인 거문리는 <외섬>으로 불려왔던 섬이다.

옛날부터 왜인이 살아서 <왜섬>, <예섬>으로도 불렸기 때문인데 <외섬>을 훈차(訓借)하여 한자로는 고도(孤)라고 하였다가 뒤엔 고도(古島)라 표기하였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1885년 영국 해군의 불법점거 전까진 사람이 거주하지 않은 무인도로 있다가 1887년 영국군이 떠나자 영국군이 설치한 시설을 이용 일본인이 어업시설 등을 위해 거점하였고 1908년부터는 건너편의 덕촌 사람들이 입도하여 촌락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서도리에 있었던 면소재지도 이 때 옮겨왔으며 이 후로 거문도의 주요행정기관과 상가 등이 들어서면서 거문도의 중심 마을이 되었다.

마을 뒤편 산자락엔 영국군의 거문도 무단점령시 사고나 질병으로 목숨을 잃어 생긴 9기의 묘지 중에 3기의 영국인의 묘지가 남아있으며 1904년에 일본의 사세보에서 거문도를 거쳐 중국의 다롄으로 시설되었던 해저케이블의 흔적도 거문리 동쪽 해변에 남아있다.

마을에 전해오는 <샛담>과 <하늘담>이라는 땅이름은 바닷가의 마을답게 샛바람 동풍이 부는 <샛담>과 하늬바람 서풍이 부는 <하늘담>으로 나뉘어 서편마을과 동편마을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를 한자로 기록하면서 샛담은 조을담(鳥乙潭)으로, 하늘담은 천을담(天乙潭)으로 하여 마을 동서쪽의 깊은 소로 책자에 소개되고 있어 왜곡되고 단절되는 우리말의 의미 전달이 안타깝다.

거문리와 삼호대교로 이어진 덕촌리는 돌산군 시절까지도 덕흥리로 불렸던 마을이다. 1976년 거문도 간첩사건이 일어난 뒤 대공상 취약성이 있다하여 <무넹이>, <신추>, <지풍개>로 불렸던 작은 마을의 주민을 덕촌과 변촌으로 이주시켜 큰 마을만 남게 되었다.

마을의 옛 이름은 억새가 많아서 <샛텀불> 또는 <쌔기미>로 불렸는데 억새인 ‘쌔’를 금속인 ‘쇠’로 해석하여 금곡(金谷)이라하였고, 덕흥리는 산등성이 길게 내려온 청룡등에서 유래된 <등리>마을을 음차(音借)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거문도의 다른 이름인 고도(孤島)또는 고초도(孤草)는 거문리의 고도와 덕촌의 옛 이름인 쌔기미의 초(草)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보이며 서도를 <쌔섬(草島)>으로 기록한 일본인의 기록도 전해온다.

마을 남쪽으로 거문도의 명물인 거문도 등대와 기와집 지붕 모양을 빼닮은 <기와집 몰랭이>,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바위> 물이 넘어온다는 의미의 <무넹이(水越)>한번 그물질에 삼백량 고기를 잡았다는 <삼백냥 굴>등 빼어난 명소가 즐비하다.

<다음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