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뉴스와 상식]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
[5월 17일 뉴스와 상식]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5.1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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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Watergate)란 19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닉슨의 재선을 위한 공작의 일환으로,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 장치를 하려 했던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

이 사건은 72년 6월17일 오전 2시반 워싱턴 워터게이트호텔 건물에 들어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괴한 5명이 체포되면서 시작됐다. 처음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워싱턴포스트지의 신참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딥 스로트(Deep Throat)'라는 익명의 고위 관리의 결정적 제보에 따라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도청을 지시했음을 밝혀냈다.

이 사건으로 관련자 제임스 코머드 등 7명이 체포되고 이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던 중에 미첼 재선위원장, 홀드먼 보좌관 등 닉슨의 측근도 관련되었다는 사실과 백악관의 은폐조작 이전부터 행해진 정적에 대한 불법적 정보활동 등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닉슨 대통령은 73년 4월 홀드먼, 에릭먼드 두 보좌관, 딘 법률 고문, 크라인딘스트 사법장관을 사임하게 하였다.

그리고 1973년 5월 아치볼드 콕스가 특별검사로 임명돼 사건의 전모와 은폐 의혹을 규명하였고 이 과정에서 콕스는 백악관의 보복을 받아 파면됐다. 하지만 하원 사법 위원회에서 대통령의 탄핵 결의가 가결됨에 따라 닉슨 자신도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애초 닉슨은 도청사건과 백악관과의 무관함을 주장했으나 대통령 보좌관 등이 연루되고 대통령 자신도 무마공작에 나섰던 사실이 폭로됨에 따라 결국 1974년 8월 의회의 탄핵결의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됐다.

1974년 8월 4일,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은폐에 사실상 관여했으며 사건 발생 후 수일 사이에 수사의 범위를 백악관까지는 확대하지 말도록 연방수사국(FBI)에 지시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러한 사실의 폭로로 의회와 미국 전역에서 당의 지지를 상실하게 된 닉슨은 8월 8일 밤 사퇴성명을 발표했고 부통령인 제럴드 R.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후임 대통령인 포드는 닉슨의 재임기간 중 범죄사실에 대해 사면 조치를 취함으로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은 사전적으로 '문'(門)이라는 뜻을 갖는 '게이트'(gate)가 권력형 비리 의혹, 부패 스캔들 등의 의미로 쓰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사건 당시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딥 스로트(Deep Throat)가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임이 2005년 6월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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