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길의 땅이야기 81] 남면 화태도 횡간도
남면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화태도는 임진왜란 때 왜적이 침범해오는 것을 건너편의 방답진에 알려준다 하여 췻대도라 하였고 뒷산이 군량미를 쌓은 노적가리를 닮아 벼이삭 수(穗)를 써서 수태도(穗太島)라 하다가 지금은 벼이삭과 같은 의미의 벼 화(禾)를 써서 화태도(禾太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화태도 섬 안에는 화태마을과 월전마을이 있는데, 화태마을에는 조선시대 병마용 말을 조련했다고 전해오는 기마장터가 전해오며, 월전마을은 달밭구미라는 우리말 땅이름을 한자화한 마을 이름이다.
월전마을은 달을 받는 마을답게 동쪽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마을로, 마을 앞 바닷가에 묻혀있는 바위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석이라 전해오고 있어 이 바위에 정월 초하룻날 동제를 올린다.
괴머리로도 부르는 작은 마을 묘두마을이 있으며 산이 곶 모양의 머리를 내민 꽃머리, 말발굽 모양이 바위에 찍혀있다는 말발따죽 등의 땅이름들이 전해온다.
화태도 동쪽에 있는 섬인 대횡간도와 소횡간도 본래의 땅이름은 <큰 빗깐이>와 <작은 빗깐이>로 불렸다. <빗깐이>란 비스듬하다는 뜻의 사투리로 섬의 지형이 북쪽을 바라보았을 때 비스듬하게 위치하고 있어 갖게 된 이름이다.
완도군에도 빗깐이라고 하는 횡간도가 있는데 이 곳 역시 섬의 지형이 비스듬하게 위치하고 있다.
횡간도의 북쪽 해변에는 넓고 평평한 바위가 있어 예로부터 이곳을 <놀이청>이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 즐기던 곳이어서 이름 지어진 곳으로 1698년 좌수영의 수군절도사였던 유성채 수사와 방답첨사, 순천부사 등이 이곳에 들렸다 간 흔적은 지금도 바위에 암각 되어 전해온다.
▲ 관왕묘 | ||
대횡간도에서만 만나보게 되는 민속 중 [관왕묘]는 여수지방에 유일하게 전해오는 특별한 민속신앙으로 삼국지의 영웅인 관운장을 주신으로 모시는데, 어업을 위주로 하던 섬사람에게 신앙은, 자연을 극복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없어서는 안 될 풍속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횡간도에 잠수군을 두어 전복이나 해산물을 진상하게 했던 기록도 보인다.
화태도 남쪽의 섬 나발도(羅發島)는 섬의 모양이 나팔처럼 생긴 섬으로 섬의 모양이 섬의 이름이 되었으며, 나발도 남쪽의 섬 두라도(斗羅島)는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다는 뜻’의 ‘두리두리한 섬’이란 뜻으로 <두리섬>이 한자로 두라도가 되었다.
섬 안에 <동끝>, <벌통구미>, <인기미> 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한자화하여 동말(東末), 봉통(蜂桶), 인금(仁金)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말이 땅이름이 그 뜻을 제대로 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남해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