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면서 가장 큰 섬
화정면서 가장 큰 섬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3.2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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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76] 화정면 개도
화정면의 가장 큰 섬 개도(蓋島)는 ‘개섬’이라고도 부르던 섬이다. 가막만이나 장수만에서 바라보는 섬의 모양이 개가 쭈뼛 귀를 세우고 있는 모양이어서이다. 개도(蓋島)란 한자는 덮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개도의 주산(主山) 이라 할 수 있는 화개산(華蓋山) 의 모양이 솥뚜껑 모양을 닮아서 그렇게 붙여졌다고 한다.

이 섬에는 봉수대와 숫돌의 산지였던 여석리에 우리지방만의 독특한 상징물인 해학적이고 친근한 모습을 한 돌벅수 등이 남아있어 섬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데 이 충무공께서 머무르고 떠나간 이야기와 충무공에 관한 전설이 여러 형태로 전해져 온다.

충무공의 난중일기에 여도진을 돌아본 좌수영 수군이 개이도(介伊島) 에 다다르게 되어 방답진의 배가 마중 나온 대목과 남해를 떠나 개이도에 머무르게 된 대목이 전해오는데 여기에서 개이도란 섬은 주민들이 개섬이라고 부르던 섬 이름을 이두식으로 표현한 이름이다.

개도의 동쪽에 있는 월항(月項) 마을은 산자락이 흘러내리다 목이 져서 '달리목' 이라고 부르던 마을로 한자로 그 뜻을 달이 뜨는 목이라고 해석하여 월항(月項) 이라고 표기하게 되었다. 마을에 쏨뱅이가 많이 잡혔다는 <쏨뱅이 끝>, 꾸적이 많이 잡혔다는 <꾸적머들>, 고래가 많이 놀던 <고래여>가 있으며 <오동여>는 옥돔이 많이 잡히던 여라고 전한다.

봄이면 화전놀이를 하던 <화전터>와 어린아이들이 소를 뜯기던 우마장 등의 이름도 옛 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땅이름들이다.

해변에 전해져 오는 <이종(以宗)금이>와 <이지(以止)금이>는 해변의 시작점과 끝나는 점을 알려주는 이름이었지만 마을에서는 그 뜻을 잃어버리고 이종금 씨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진막마을로 더 잘 알려진 신흥마을은 남해안의 여러 섬에서 나타나는 진막이라는 이름으로 진막은 옛날 군사들이 임시로 주둔하였거나 사람들이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임시로 거처하던 막이 있었던 곳의 땅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푸른 돌이 많은 해변 <청석금이>와 배들이 쉬던 <배신기미>가 있으며 마을 뒷산은 봉화산이라 하고 봉수대 터가 전해온다.

개도의 가장 큰 마을인 화산마을은 큰 동네 또는 대동이라고 부르던 마을로 화개산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해방 후인 1952년부터 부르게 되었다. 마을에는 웃몰, 아랫몰, 건너몰과 멀리 떨어져 있어 별촌이라고 부르던 작은 마을들이 위치에 따라 이름이 지어져 불리게 되었다.

해안이 둥글어서 불려진 도장개, 시누대가 많다는 신대난골, 까끔골창, 산소골, 산천재, 질마지, 흙구덕, 바람따지, 큰재, 작은재, 등의 한 번 보고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정감 있는 땅이름들이 전해져 오며 <운꼬지>라고도 하는 별촌 마을의 <찰떡여>는 파도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바위가, 부딪히는 파도에 찰떡찰떡 소리가 나서 <찰떡여>라고 하였다는 재미있는 유래가 전한다.
여석마을은 마을부근에 숫돌의 재료가 되는 돌이 많아 <숫돌기미>라고 부르던 곳을 한자로 고친 마을 이름이다.

모전마을은 <띠밭몰>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이 잔디의 다른 말인 띠가 많은 지역이어서 불려진 이름이며 호령마을은 마을 뒷산이 호랑이 모습을 하여 <호야개> 또는 <호녁개>라고 하던 곳을 호령(號令)이라는 한자로 표기하게 되었다.

개도마을의 땅이름에선,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함께 담아서 전해주는 우리말 땅이름의 특성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육지보다 섬 지역에서 더 선명하게 전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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