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도 떨어뜨리는 ‘익명보도’ 지양해야
신뢰도 떨어뜨리는 ‘익명보도’ 지양해야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2.2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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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김경호 <논설실장, 제주대 교수>
본지 논설실장인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김경호 교수로 부터 두 차례에 걸쳐 익명보도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보고 그 대안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한 우리 언론 보도는 가히 익명보도의 전형이라 할 것 이다. 많은 보도가 소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여 김 위원장이 어떤 교통수단으로 중국을 방문했는지, 어느 곳에 머무르고 있는지, 또한 방문의 목적이 무엇인지 추측에 추측을 거듭했다.

조선일보는 김 위원장이 열차가 아닌 전용기를 타고 중국으로 향했다고 “중국과 북한 사정에 두루 밝은 익명의 소식통”이 밝혔다고 보도했고, 중앙일보는 “베이징의 한 소식통”을 직접 인용해 미국의 강경책에 따른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과의 유대를 과시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크다고 김 위원장의 방중 목적을 점쳤다.

동아일보 역시 “베이징의 한 소식통”의 말을 빌어 김 위원장이 베이징 도착 이후 병원에서 건강 진단을 받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한편 한겨레신문은 연합뉴스 기사를 전재하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현재 북한에 있으며, 중국을 여행 중인 의문의 인물은 그의 가족일 수 있다고 “북한의 한 관리”가 12일 밝혔다며 익명의 출처를 인용해 앞선 보도들과 상반된 기사를 싣기도 했다.

아무튼 이번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보도는 중국 공안당국과 김 위원장 일행의 연막작전과 정보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정보의 성격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각종 설(說)과 확인되지 않은 취재원의 주장에 근거하여 기사를 작성하는 우리 언론의 익명보도 관행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라 할 수 있다.

사실 익명보도는 신원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정보원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기사화할 수 있고 동시에 취재원을 보호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으로 인식돼,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나 정치적 사건의 보도에 주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익명보도로 인해 언론사가 입게 되는 신뢰도 추락과 같은 피해보다 공익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고 판단될 때 익명보도가 동원되었다.

한편 근래의 익명보도는 취재원보호의 본래 취지와는 상관없이 취재의 편의를 위한 습관적인 수단으로 변용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조선, 중앙,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익명보도 중 46.5%가 습관적으로 익명을 인용한 것으로 나타났고, 26.6%는 추측보도, 17.6%는 언론사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익명을 인용한 경우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취재원보호의 목적으로 익명처리한 경우는 6.17%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보다 최근에는 익명이나 다를 바 없는 네티즌의 주장을 언론이 자주 인용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형성된 여론에 관심을 갖거나, 이를 취재보도의 팁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이디의 익명성과 신분이 특정되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네티즌은 익명의 정보원이나 다를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견이 신중한 고려 없이 언론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특히 황우석 줄기세포논란과 같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일수록 취재원으로서의 네티즌 인용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익명보도가 취재원으로부터 “익명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라기보다 대부분 자기 스스로를 객관적인 취재원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억지로 동원한 어휘”들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주어진 정보의 사실을 정확한 취재원을 통해 실명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익명의 출처를 표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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