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하나 귀는 둘
입은 하나 귀는 둘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2.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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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한창진<논설위원, 여수시민협 상임공동대표>
사람에게 입이 하나고, 귀가 둘인 것을 두고, 말 잘 하는 명사들은 자기 말은 한 번 말하고, 남의 말은 2배로 들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럴듯한 표현이다.

민주주의 꽃은 토론이고, 토론에서는 일방적인 주장보다는 남의 의견을 듣고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자기주장만 하지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아 부작용이 많이 생긴다. 누구보다도 공직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 시장, 시도의원은 주민들의 의견을 그 만큼 많이 들어야 한다.

많은 단체들이 주최한 행사에 국회의원과 시장이 참석하기를 요청하고, 정치인들은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빠짐없이 참석을 한다.

문제는 간단한 축사와 격려사를 하면 다른 일정을 핑계로 본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는 데 있다. 더욱 민망한 것은 시장이 주최하여 시정에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듣는 회의에서도 바쁜 일정 때문에 인사말만 하고 가버린다.

지난 1월에 열린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합동 연석회의 때였다. 여수지역의 각 기관 단체장, 시민사회단체장이 참석한 가운데 1년 사업계획 발표와 의견을 듣는 중요한 회의였다.

개회사를 한 시장이 자리를 비우자 이어서 동석한 부시장, 국장들도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앞좌석에 함께 한 여수대총장 등 기관장들도 머쓱해서인지 얼마 후에 하나 둘씩 일어선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시정에 반영하기 위해 정작 들어야 할 주요 인사는 빠진 채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물론 담당자가 따로 보고 전을 올리겠지만 직접 듣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것은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행사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바쁘면 행사를 일정에 맞게 개최 하던가, 아니면 다른 책임자를 보내서 대신 인사말을 하고 끝까지 회의에 참석하게 하여야 한다.

그러지는 않겠지만 자기 말만 하고,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것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과 듣기 싫은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 된다. 이런 현상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어떤 회의는 담당 계장이 설명하거나 참석하기도 한다.

선거 때만 되면 “여러분의 입이 되겠습니다.”하면서 여론 수렴을 강조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듣기보다는 자기 고집만 내세워 말썽이 된다. 참여 민주주의에서는 수직적인 리더십보다는 수평적인 리더십을 요구한다.

대통령부터 평검사들과 와이셔츠 차림으로 장시간 쟁점 토론하는 모습은 파격적이었다. 텔레비전에 밀릴 것 같은 라디오가 살아나는 것은 하루 종일 명사들이 나와서 토론하는 프로그램 덕분이다.

토론하는 것을 싫어하는 정치인은 시대에 뒤떨어진 부적격자이다. 담당 직원이 써준 연설문을 읽거나 녹음기 틀어놓은 것 같이 어느 자리에든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지도자는 스스로 나서지 않아야 한다.

과거에는 자리가 인물을 만들었다. 지금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활동하여 준비된 지도력이 자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주어진 권한으로 직원을 통솔하기보다는 철학과 실력으로 지휘하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갈수록 학맥과 인맥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 초고속으로 변화가 심한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은 네트워크 시대에 맞는 수평적인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인재를 발굴하여 그 의견을 듣고 가려서 반영하는 것이다.

세계박람회 유치 여부에 따라 고도성장이 결정되는 중대한 기로의 여수로서는 인재를 활용하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도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우화가 생각나는 까닭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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