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법 사회의 함정”
“이진법 사회의 함정”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1.1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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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이상훈 <논설위원, 여수YMCA사무총장>
오늘날 매우 보편적인 필수품이 되어, 이제는 기계라 부르기조차 어색해져버린 것이 컴퓨터이다. 생활 속에서 컴퓨터와 연관되지 않는 일이 거의 없는지라 이 기계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 영역에까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예컨대 과거처럼 글을 펜으로 종이 위에 쓰는 일이 이제는 쉽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컴퓨터의 기초적인 원리가 이진법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것 같다. 이 녀석은 0과 1밖에는 인식하지 못한다. 즉 흑백, OX, 음양 등 지극히 뚜렷하고 단순하게 구별되는 두 가지 요소 외에는 입력자체를 거부한다. 물론 바로 이 점이 이 녀석의 기능을 엄청나게 키우게 된 비결이다.

둘 중에 하나만 재빠르게 인식하고 조합하여 그 결과를 내놓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일이 빠른 것이다. 이것은 역설이다. 가장 단순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계산도 막힘없이 해낸다니 말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대개의 사람들은 으레 뒤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구상을 해보기 마련이다. 필자 역시 구태를 무릅쓰고 병술년 새해의 키워드가 무엇이 될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우선 떠오르는 것이 월드컵이다.

그리고 지방자치선거, 결과는 내년에 나오겠지만 그것을 결정할 과정은 올해 진행된다는 점에서 2012세계박람회도 떠오른다. 그런데 한결같이 둘 중의 하나라는 경우의 수를 동반하는 일들이다.

원한만큼(16강이든 8강이든) 오를 것이냐, 당선될 것이냐 낙선할 것이냐, 유치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명확하게 갈라지는 결과를 가져올 일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결과이든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우리를 흥분시킬 그 결과들이 사뭇 기다려진다. 그런데 한편으로 걱정이 앞선다. 16강이든 8강이든 탈락하면 어떻게 될까. 황우석 교수에 대한 불과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의 우리 사회의 동요를 보면 그렇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당선되거나 낙선되면 나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는 사람과 나는 또 얼마동안이나 어색한 조우를 해야 할까. 10여 년 동안 열정을 쏟아 부은 세계박람회가 또 다시 X 판정 속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면 우리 여수시민들의 허탈감은 또 어떻게 감당해야하나.

이런 정도의 걱정은 그래도 괜찮다. 보다 근본적인 걱정은 양극화로 치닫는 세상기운이다. 똑같이 고생하고 사회적, 민족적 아픔을 나누던 시기에는 가난했지만, 핍박받으면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시대와 맞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젠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풍조가 늘어간다.

경쟁사회에서 승리하는 것은 미덕이라고, 능력 없으면 그렇게 살다가 조용히 꺼지라고, 신자유주의와 사립학교 사유주의와 그 외 여러 가지 탈과 논리를 뒤집어 쓴 목소리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컴퓨터가 0과 1 두 개의 키만으로 조정하고 지배하는 사회, 그래서 내편과 내편 아닌 것 둘로만 쪼개지는 세상의 끝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십진법을 되찾자. 3도 8도 입력하여 만족과 행복의 기준 스펙트럼을 보다 넓히자. 꼭 눌러 이기지 않아도 지는 것이 되지 않는, 지더라도 치욕스럽거나 비굴해지지 않는 그런 사회를 만들자.

컴퓨터, 요 녀석도 그런 사회 만드는데 쓰이는 도구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기분 좋은 월드컵응원, 축제와 같은 지방선거, 여수의 미래를 환히 밝혀주는 세계박람회의 꿈, 새해 여수시민들 모두의 것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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