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도는 왜 그리게 하셨을까?”
“우리나라 지도는 왜 그리게 하셨을까?”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6.01.16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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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세상얘기 4] 벼루와 먹, 그리고 우리나라 지도
   
과거는 현재를, 현재는 미래를 나타내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삼십 년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아버지 직업은 선주였던 큰 아버지 어선의 선장이셨다. 여름철이면 정어리를 주로 잡았고, 겨울이면 감성돔ㆍ참돔 등을 주로 잡았던 듯하다.

지금은 물고기 씨(?)가 말라, 어민들이 삶의 터전인 황폐화된 어장을 떠나는 실정이지만, 이 때는 고기가 참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잡아온 정어리를 털 때면 그물 뒤에 서서 땅에 떨어지는 정어리를 줍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던 광경이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에게 뭐라 한 마디 하실 법도한데 별 말씀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재미삼아 주어온 정어리로 만든 찌개는 아버지가 가져오신 것보다 더 맛있었다는, 순전히 나만의 별난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굳이 정어리를 주어올 필요가 없었는데도 사람들 속에서 주웠던 것은 눈망울을 크게 뜨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이다.

내게 아버지의 기억이 가장 각인(刻印)되어 있던 때는, 초등학교 사학년 때였던가, ‘一’자(字)와 ‘l’자를 쓰게 하시고, 우리 나라 지도를 사실대로 그리게 하셨을 때다.

벼루와 먹을 가져 오라시며 화선지 대신 신문을 펼쳐 놓고, 벼루에 물을 부어 먹 가는 법을 일러 주시며 ‘이렇게 해 봐라’했던 아버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으로 대한 나는 팔 아픈 줄도 모르고 내내 먹만 갈고 끝이 났던 것 같다.

다음 날 아버지는 붓에 먹을 묻혀 신문 위에 ‘ㅡ’자만 쓰게 하셨다. 다음에는 ‘l’자만 썼던 기억이다. 나는 그 때, 똑 같은 글자 한 자만 온종일 쓰면서 그렇잖아도 튀어 나온 입이 더욱 튀어 나왔던 걸로 기억된다.

그런 후 아버지는 위도와 경도를 그리는 방법을 일러 주시며, 도화지에 우리 나라 지도를 그리게 하셨다. 위도와 경도를 그리는 데에는 자와 콤파스, 지우개 등이 필요했다. 자로 간격을 재, 그 간격에 맞게 도화지에 그리는 작업은 많은 신경을 써야 했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지우고 다시 그려야 했다.

위도와 경도가 그려지면 우리 나라 지도의 외곽선을 옮겨야 했다. 이 때 난 꼭 압록강부터 시작해 압록강으로 끝을 냈었다. 제일 쉬웠던 부분은 두만강과 내가 살던 남해안 쪽이었던 거 같다. 제일 어려웠던 곳은 영일만 부근의 호랑이 꼬리와 인천 등의 서해안이었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리고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러 가시면 의례히 '一', 'l'쓰기와 지도 그리기는 숙제로 남았고, 오시면 검사를 맡아야 했다. 칭찬과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유년(幼年)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 중 하나이다. 이 과제는 5학년까지 계속되었고, 이후로 아버지의 숙제는 더 이상 없었다.

당시에 난, 아버지가 내려주신 과업(課業)을 나름대로 즐겼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아마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은 나만의 과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 먹을 갈던 때의 부드러운 감촉, 우리 나라 지도를 그린다는 사실에 대한 흥분 등의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대학 졸업 후 3년여 동안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때로 다른 과목을 대신 채우곤 했는데, 사회 시간에 우리 나라 지도를 그리면 "선생님, 지도 참 잘 그리네요"하는 소리를 듣곤 했을 정도로 지도 그리는 데에는 뿌듯한 자신감이 묻어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一'자와 'l'자만 왜 쓰게 하셨을까? '人'(사람 인)과 'ㆍ'(점, 마침표) 등과 서예가들이 즐겨 쓰는 도(道)ㆍ불(弗) 등 폼 나는 다른 글자들도 많은데… .

아버지는 우리 나라 지도를 왜 그리게 하셨을까? 민족의 비극이었던 6ㆍ25를 겪었던 아버지는 왜 남쪽만 그리게 하지 않고, 남과 북을 포함한 우리 나라 전도(全圖)를 그리게 하였을까?

지금은, 아마 ‘말을 아끼면서 한 길로, 자신을 세워가라’ ‘우주의 중심인 우리 나라만 제대로 알아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세상을 넓게 보고 큰 뜻을 품어라’는 게 아버지의 뜻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느낌뿐이다.

아버지께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여쭤보질 못했다. 서로 말을 아끼는 무뚝뚝한 부자(父子)지간이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니, 굳이 여쭤볼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도 시간을 내 꼭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아버지는 뭐라 말씀 하실까? 궁금하다.

나 자신도 제대로 서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이지만,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여자 아이와 내년 초등학교에 들어 갈 남자 아이 둘을 둔 아버지로서의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까?’.

먼저 아이들을 키운 한 선생님은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아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지녀라”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주제넘게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까?’ 감히 생각하는 건, 대책 없이 결행했던 결혼과 부모로서 아무런 준비 없이 아이들을 낳고 기를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것일 뿐.

나의 이런 고민을 아는지 아내는 “어떻게 가르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고 한다. 삶 속에서 부모가 몸소 보여주는 것 이상의 교육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 부여한 과제(課題)는 혹여 당신의 삶에 대한 물음은 아니었을까? 막연히 추측하며 오늘도 내일의 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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