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 중부 서쪽에 위치
돌산 중부 서쪽에 위치
  • 박태환 기자
  • 승인 2006.01.0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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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68] 돌산읍 금봉리
평사리와 군내리 사이, 가막만을 길게 따라서 돌산 중부의 서쪽해안에 위치한 금봉리는 금천과 봉양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
금봉리 에는 항대, 금천, 송시, 속전, 봉양마을이 있으며 마을마다 지금의 이름을 갖기까지에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평사리를 거쳐 처음 만나는 항대(項大)마을은 우리말 땅이름인 <목대>를 한자로 표기한 마을 이름으로 이는, 마을 앞의 섬이 썰물이 나면 이어졌다가 밀물이 되면 갈라지는 목으로 이루어져 지어진 이름이다. 소호동의 항도마을도 비슷한 지형이어서 <목섬>이라는 옛 땅이름이 한자로 고쳐져서 항도(項島)가 된 경우로 항도마을의 옛 지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금봉리의 가장 큰 마을인 금천(金川)은 모래가 많은 해변이어서 <모래틈>, 만(灣)으로 이루어져 <곱은개>로 부르던 지역으로 마을 이름은 처음 이씨(李氏)가 터를 잡아서 ‘이기(李基)통’ 또는 ‘이가동(李家洞)’으로 불렸다.

금천이란 이름은 일제식 행정구역 개편이 있던 1914년에 지어진 이름으로, ‘이기통’ 이나 ‘이가동’ 이전 마을 뒷산인 <노우산(老牛山)>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을 '우천(牛川)'이라하다가 이곳에서 사금이 채취되었기 때문에 금천(金川)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서덕리 에서 군내리로 이어지는 서쪽 고개를 넘으면 처음 만나는 마을 봉양마을은 <피내>라고 부르던 곳이다. 이는 마을이 산자락에 위치하여 수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를 많이 재배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피내>는 한자로는 ‘직천(稷川)’이라 하는데 <피내>의 이름이 피를 연상해서인지 임지왜란과 동학농민전쟁 시에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마을 이름 봉양(鳳陽)은 메봉산의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갖게 된 이름이다. 봉양마을에는 마을 서쪽으로 항대마을까지 이어지는 골짜기를 <업치기>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는 꿩이 엎드린 모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20여 호나 되는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바다가 없고 농토가 적은 마을이라 거의가 떠나고 음식점을 함께하는 농원들만 남았으며 <업치기>란 우리말 땅이름은 ‘복치(伏峙)’로 바뀌었다.

봉양과 속전마을 사이에는 <육손쟁이몬당>이라는 고개가 있다. 고갯마루에 있는 소나무 가지가 여섯 군데로 나눠져서 여섯 마을을 가리키고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육손쟁이 소나무는 찾기가 힘들다.

속전(粟田)마을은 마을 부근으로 조를 심은 밭이 많아서 <조밭골>이라고 하던 곳을 한자로 표기하여 속전(粟田)마을이라 하였으며 송시(松枾)마을은 마을에 소나무와 감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이름 <송시밭골>에서 유래되었다.

항대와 금천 마을은 청정해역인 가막만과 인접한 해안선의 길이가 길어 양식업을 하는 가구가 많은 마을로 특히 여수의 특산물인 굴양식의 주산지이다. 최근에는 항대마을부터 이어지는 굴구이 식당 촌이 성업 중이며 소비자가 직접 각종 굴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마을이다.

섬과 육지로 둘러싸여 호수처럼 펼쳐진 가막만에는 가막섬을 비롯한 많은 섬들이 행정구역으로는 금봉리에 속하여 있는데 각각의 섬들이 이름 지어진 유래가 재미있다.

가막섬은 본래 ‘까막섬’이라고 부르던 이름으로 섬에 나무가 많아서 멀리 서 보면 까맣게 보였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송아지를 닮아서 지어진 <새안치섬>. 솥뚜껑을 닮은 <소두뱅이>, 북 모양의 <북섬>, 물이나 술을 담았던 장군 모양의 <장군섬>, 수줍은 각시마냥 물속으로 숨었다 드러났다 하는 <각시여> 등 이름만 들어도 그려지는 금봉리에 속한 섬들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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