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되고자 자원했지요”
“후배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되고자 자원했지요”
  • 강성훈 기자
  • 승인 2005.12.15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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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서 정년 맞이하는 박삼정 동초교 교장
   
▲ 내년 2월 모교에서 정년을 앞둔 박삼정 여수동초등학교 교장
“그러지 말고 차나 한잔 하고 가게"
내가 배워 온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맞이하는 정년은 어떤 모습일까?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정년을 앞둔 선생님의 모습이 못내 궁금했다.

40여년전 졸업한 모교에서 정년을 맞이하는 박삼정 동초등학교 교장을 만나러 교정을 찾았다. 수십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교정 한 켠의 향나무를 올려다보며 박교장이 걸어왔을 수십년의 교직생활을 떠올려본다.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 인사를 건네자 이내 손사래 치는 이를 만난다.
“내가 한 게 있어야지,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자원해서 모교를 찾았는데 정작 해준 게 없어”라며 겸손을 내보이는 박 교장이다. 박 교장에게 첫 배움의 길을 시작했던 모교에서 가르침의 길을 마감하는 현실은 특별할 것도 없는 지금껏 걸어왔던 일상인 것이다.

박삼정 교장이 동초등학교에서 마지막 교직생활을 보내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난해 1월이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아온 교사로서 후배들을 위해 마지막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다”는 박 교장은 그렇게 지난 2004년 2월 모교를 찾았다. 학교를 졸업한 지 50여년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모교를 졸업한 교사들이 수차례 학교를 거쳐갔지만 교장으로서 모교에서 정년을 맞이하는 것은 박교장이? 62년 역사 이래 처음이다.

“40여년간의 교직생활동안 여러차례 기회가 있었을 법도 하건만 이제야 연이 되었는지 뒤늦게 후배들을 찾아 미안하다”는 박 교장이다.

박 교장은 1956년에 학교를 마친 12회 졸업생이다. 이렇듯 이제는 코흘리개 학생으로가 아니라 학교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학교를 지키고 있다.

박 교장은 1962년 순천사범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직생활을 시작해 봉덕초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마지막 기착지로 동초교를 찾은 박 교장이 교사로서가 아니라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먼저 가르친 것은 사람됨이었다.

평생 교직생활을 통해 전인교육을 강조한 박 교장은 독서교육과 필수악기 수료제를 실시해 어린 후배들의 정서함양과 인성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특히 필수악기 수료제는 지역민들과 학부형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재학생의 90%가 멜로디언, 리코더, 단소 등 악기를 자유스럽게 연주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40여년간 얻은 작은 지혜라고나 할까. 어린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전달보다 그들의 마음됨을 돌보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선택한 일이다”는 박 교장이다.

50년이라는 시간동안 학교도 많이 변했을 법도 하다.
“변한 것? 하나도 없어. 저기 교정에 나무들 그대로고 어린 후배들 해맑은 얼굴 그대로인걸”하며 웃는 박 교장.?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학교건물을 군인들에게 내주고 여기 저기 떠돌아 디니면서 배워야 했던 시대적 어려움이나 있었을까...”

하지만 학교도 세월의 흐름은 막지 못했다.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60학급 규모에 3천여명이던 학생이 지금은 21개학급 7백여명으로 줄었다.
“아이들로 시끌벅적해야 할 교정이 점점 조용해져만 가는 것 같아 아쉽지”라는 박교장.

“지역의 교육환경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들이 많다”는 박교장은 “유난히 밝고 정직한 어린 후배들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학부모들이나 교육당국의 문제만으로 국한시켜서는 안되고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이제 곧 다가올 겨울 방학을 보내고 나면 정든 교직생활을 정리해야 한다.
“막상 떠나려니 더 큰 아쉬움만 남는구먼.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왔는데 오히려 해 준 것 없이 떠나려니 어깨만 무겁구먼”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박 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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