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생각하는 마음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12.1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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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고한석 <논설위원>
   
2005년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매년 연말이 되면 누구나 예외 없이 느끼는 스산한 기분은 한겨울이라는 계절적 영향이 매우 큰 것처럼 보인다.?

호된 북풍으로 바다는 무거운 검푸른 빛깔을 띠며 요동치고, 산야의 초목과 가로수들은 헐벗은 나목(裸木)으로 변하는가 하면 길가 행인들에겐 몰아치는 한파가 옷깃을 곧추세우도록 재촉하는 게 한겨울 풍경들이다. 이때, 문득 우리는 새삼스레 자신을 돌아보는가 하면 또 자신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타인들을 보다 진지한 자세로 떠올리게 된다.

금년엔 유독 양극화(兩極化)라는 말이 사회전반에 걸쳐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빈부(貧富)의 양극화는 그 심각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회복지를 운위하는 정치인 학자 전문가들이 제아무리 목청을 돋우어본들 그리고 입안해 결정된 정책을 국가행정력을 동원해 나름대로 펼쳐 보인들 가난의 대물림으로 내몰린 다수의 소외된 빈곤층들에겐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그나마 일부를 제외하곤 사회복지란 말 자체를 생경스럽게 느끼는 빈곤층들이 대다수다. 이른바 스스로 중산층이라 여겼던 사람들이 신 빈곤층으로 전락한 계층들과 함께 호적상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조그만 시혜조차 거부당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층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마디로 국가가 개인의 가난을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의 범위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에 따라 국가의 등급이 매겨지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마냥 부국이 되기만을 기다린다는 것도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하릴없는 방책이다.

다행이 우리에겐 예로부터 나보다 생활형편이 못한 이웃을 생각하고 돌보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전통으로 가지고 있다. 특히나 이 고장은 예로부터 인심이 후(厚)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지역이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소외되고 그늘진 이웃들을 위해 봉사의 손길이 그치지 않고 펼쳐지고 있다는 반가운,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각급기관·봉사단체·기업체·종교단체는 말할 것 없고 어린 학생들로부터 일반가정 그리고 시민단체에 이르기 까지 너나없이 한마음을 모아 그 <뜻>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이와 같은 훈훈한 인정의 교류야말로 살맛나는 세상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허지만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는 것 같다. 그건 바로 봉사의 참뜻을 일깨우는 일이다. 봉사의 진의는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애씀을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라는 대목이다.

가끔 불우이웃을 위한 성품 전달식에서 기념사진 찍는 모습을 본다. 나무랄 일은 아니다. 헌데 반대로 기념식 사진을 찍기 위해 전달식을 갖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바로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활동하는 것 같아 왠지 개운치 않고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측은하고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겉치레로만의 봉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안하니 보단 낫겠지만 말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란 어떤 대상을 불쌍히 여겨서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 언짢아지는 자비로운 마음결이다. 그것은 바로 어진 덕성인 인(仁)과 직결된다. 따라서 측은하고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지 않는 겉치레만의 봉사란 결코 참다운 봉사가 아닐 것이며 보는 사람이나 수혜자의 입장에서도 마냥 흐뭇하고 고마운 일은 아닐 것이다.

뭔지 모르게 스산하고 아쉽고 허전한 이 추운 한겨울 연말에 그래도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맥동치는 한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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