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머리를 닮아 ‘쇠머리’
소의 머리를 닮아 ‘쇠머리’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12.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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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63] 돌산읍 우두리
450미터의 돌산대교를 건너면 만나게 되는 마을이 돌산읍의 우두리 마을이다. 우두리에는 상동, 하동, 백초, 진목, 세구지, 진두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지금은 택지로 개발된 세구지 앞 강남기미 지역이 가장 큰 마을로 변하였다.

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진두(津頭) 마을은 <나룻고지>라고 부르던 땅이름을 한자로 고쳐 진두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나룻배가 오가던 나룻머리 동네였기 때문이다.

나룻고지 진두마을 동쪽으로 대형 조선소를 지나면 만나는 마을인 백초마을은 <신추>라고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하얀 풀이 많은 동네로 해석하여 백초(白草)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마을 뒷산으로 지천으로 깔려서 자라는 억새가 가을이면 하얀색으로 변하여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도 곁들여 전해왔다.

남해안 바닷가에는 본래 신추라고 불렀던 많은 백초마을 들이 있다. 여수지역만 해도 화양과 돌산뿐 아니라 화정면이나 남면의 자그마한 섬까지 여러 곳의 신추라는 지역이 전해오고 그 중에 일부는 백초마을이란 이름으로 전해온다. 이들 신추지역을 살펴보면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는데 추가 심한지역이란 점이다.

추는 절벽이 있는 지형을 말하며 신추는 ‘힘이 세다’를 ‘심이 시다’라고 표현하는 사투리 말과 같이 심한 절벽이나 낭떠러지라는 뜻이었지만 백초라는 한자 옷을 입으면서 뜻까지 변하게 된 것이다.

백초마을 남동쪽의 진목마을도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고쳐 적었다. 진목마을의 본래의 이름은 <참낭기미>라고 하였다. 마을 주변에 참나무가 많았기에 부르게 된 이름이었다. 이를 참 진(眞)과 나무 목(木)으로 표기하여 진목마을이 되었다.

세구지 마을은 어느 지역 중간이란 뜻의 ‘새(사이)’와 장소를 의미하는 ‘-구지’가 합쳐진 땅이름 이었지만 한자로 세구지(世求地)로 표기하게 되니 세상을 구한다는 뜻이 되어서 가난을 면하게 한 부자동네라는 유래가 더해져서 전해왔다. 일제 강점기에 여수시내에 채소를 공급하던 대규모 농장들을 일본인이 운영을 하면서 세구지의 유래는 더 위력을 발휘했다.

들판이 곧고 길게 벋어있어 이곳을 <진버들>이라 불렀고 요망소 아래 골짜기 <요망골>은 돌산에서 여수를 건너던 ‘사람들이 먼 길을 걸어와서 이곳에서 얼굴을 씻고 요망을 내어 요망골이라 했다’ 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해왔다.

상하동(上下洞) 마을은 본래 <쇠머리>라고 부르던 마을로 우두리의 이름은 이 곳 쇠머리 마을의 이름을 한자로 옮겨 적은 땅이름이다.

쇠머리는 이 마을의 산의 형태가 소의 머리 모양이어서 쇠머리라 하였다고 전해왔는데, 일제는 쇠머리 마을의 이름자인 소가 힘이 세고 고집이 세어 이 마을의 주민도 일본정부에 항의가 많고 힘이 센 장사가 많이 태어 날거라는 주민들의 믿음이 있다하여 마을 이름을 우두리(牛頭里)에서 우두리(右斗里)로 바꿔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하였다.

1995년 주민의 청원으로 마을이름은 본래의 글자를 찾았다.
상하동 마을 남동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해변마을 <달밭기미>는 ‘달을 받는 해안’이란 의미와 걸맞게 해돋이의 명소로도 부상하는 곳이다. 본래 달맞이를 더 즐겨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일출의 명소보다는 월출의 명소를 많이 남겨놓았고 달맞이가 아름다운 달밭기미의 이름을 이 마을 해변에 남겨놓았다.

탑이 있던 <탑싼기미>, 따뜻한 <따순기미>, 호랑이가 있었다는 <범기미>의 이름이 함께 전해오는 달밭기미로 가는 아름다운 언덕길에는 인생의 황혼을 보내시는 남산요양원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다. 훈훈한 정을 담아 한번쯤 찾아뵙고 오는 길엔 아름다운 우두리 마을의 주변경관에도 흠뻑 젖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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