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의 자녀교육은 기다림?
아버지들의 자녀교육은 기다림?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5.12.13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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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세상 얘기 2]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가르친 것이 없습니다”

요즈음 보기 드물게 절제된 생활을 하고 있는 지인과 나눈 대화이다.

잠깐 숨을 고른 뒤, 지인(知人)은 ‘부끄럽다’며 어느 날 싸우고 들어온 아이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너보다 약한 아이에게 강하게 굴었던 건 아니지?”
“네”
“비굴하게 군 건 아니지?”
“네”
“됐구나”

그가, 아이와의 대화를 소개하는 것은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는 비굴하며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군림하는 세태를 비꼬아 ‘이런 사람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로서의 소망일 것이다.

내친김에 “자녀교육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물었다.
“교육은 ‘품행’이자 ‘습관’입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올바른 품행과 습관을 익히게 하여 그것을 실천하게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럼, 아버지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합니까?”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군자불기(君子不器)라 하여, 사람은 한정된 그릇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그릇은 소망과 희망, 목표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능력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자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키우고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자식이 스스로 자신의 그릇을 키우는 것을 지켜보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들의 자녀교육은 ‘기다림’ 아닐까요? 자식에게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든 행동이 교육입니다. 아버지들이 자녀 앞에서 언행(言行)을 삼가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교육을 국가의 백년지계(百年之計) 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이는 ‘교육을 통해 후손들이 올곧은 품행(品行)과 습관(習慣)을 길러’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 가라는 염원이 담긴 말일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루어졌던 교육이 지금은 생계 수단으로 변해버렸다. 경제적 가치가 모든 행동규범의 중심에 서버렸다. 유교에서는 이를 우려하여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를 설정(?)한 것일까?

인간의 본성인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
이를 살펴보면 인(仁)은, 어진 마음씨와 자애(慈愛)로움, 친근함, 인정(人情) 등 사랑의 덕(德). 즉,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것’ 혹은 아버지로서 자식에서 ‘사랑을 베푸는 행동규범’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의(義)는, 도의(道義)로 군신(君臣)ㆍ부자(父子) 등 인간관계에서 주어진 지위에 따라 ‘마땅히 행해야 하는 도리’이다. 이는 물질적 이익보다 정신적ㆍ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개념으로 자신의 나쁜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고, 타인의 나쁜 행동을 측은하게 여기는 ‘실천규범’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禮)는, 사회적 관습인 ‘생활규범’으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형식’이다. 예는 인간 행동을 규정하는 내면화된 예의범절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강조한다.

지(智)는, 인간의 도덕적 인식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옳고 그름(是是非非)을 가리는 분별규범’으로 표현된다.

신(信)은, 믿음이 있으며 성실하고 속임이 없는 ‘언행이 일치되는 것’으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거스름이 없는 ‘활동규범’ 자체로 ‘인간 상호 간의 도리’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렇듯 유교에서 인의예지신을 인간의 본성으로 삼았으니, 자식을 인간답게 기르고자 하는 아버지라면 이를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는가? 자녀교육에서 인의예지신처럼 행동하고(仁), 실천하며(義), 생활 속에서(禮), 분별을 갖는(智), 활동규범을(信) 삶 속에서 실천하는 자세를 스스로 가지라는 뜻은 아닐는지?

   
지리산에서 온 그는 야생녹차를 만들며 수행을 하고 있다. 20대 초반의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을 둔 그는 주말 딸아이에게 벙어리장갑을 선물했다고 한다. 아이는 무척 기뻐했을 것이다. 그의 이 작은 선물은 행복과 기쁨으로 전해져서 딸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아버지로서의 표현일 것이다.

그의 아들은 인터넷 소설을 쓰고 있다. 그가 삶 속에서의 실천을 통해 아들에게 보여주었던 생활은 그대로 아들에게 가르침이 되어, 아들도 자신이 선택한 삶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지혜를 얻었으리라 믿는다.

그도 여느 아버지들처럼 아들이 든든하면서 한편으론 염려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염려. 하지만 거뜬히 이겨내리라는 것도 알 것이다.

학교교육에만 맡겨둔 자녀교육. 어머니들에게만 맡겨둔 자녀교육. ‘우리 교육은 희망이 없어’ 라는 말보다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다함으로 갈고 다하여 닦기’ 위해 자신의 여건을 살리면서 이제 아버지들이 행동에 나서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아버지들이, 돈만 버는 아버지ㆍ일만하는 아버지에서 벗어나 가족과 사회와 함께하는 아버지로의 믿음과 신뢰가 회복될 때 교육도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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