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놈 팔자려니...
네 놈 팔자려니...
  • 서선택 기자
  • 승인 2005.12.02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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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서선택<편집위원장>
여보게 친구!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도 엉망이라 식사 때마다 침울하다네.
텔레비전에 비춰진 농민들의 처참한 몰골과 주검을 보면서 밥숟가락을 뜰 수가 없다네.

더구나 깊이 파인 주름살 사이로 서러운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볼 때면 남극이나 아프리카 같은 오지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네.

친구! 우리들이라도 하얀 쌀밥 쳐다보며 미안한 생각 좀 하고 사세나.
농민들이 일구어 놓은 논두렁에 곧 첫눈이 내릴 것을 생각하면서 친구에게 말을 건네네.

지역에는 최근 연이은 노동계의 파업으로 사무실에서 후배들 얼굴보기가 힘들다네.

썰렁한 편집실을 들어서면서 혼자말로 “왜놈 순사는 칼 찬 맛에 한다는데 이거 말 한마디 건넬 후배가 없다”는 푸념도 해 본다네.

예전에 일했던 신문사에서 들었던 컴퓨터의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그립네.
기자들의 자판 두들기는 소리는 세상을 움직이는 소리 그 차체인지도 모른다네.

그 소리는 마치 군대에서 구보를 할 때처럼 극한 상황을 버티게 해준 군화 소리와 매한가지라네.

하지만 지역신문에서는 그 우렁찬 소리를 내지도 듣지도 못한다네.
고향에서 지역신문을 만든다는 것이 참으로 힘드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네.

2년 동안 지역신문을 만들면서 언론경영이 이렇게 쉬운줄 몰랐네.
가장 원칙적이면 가장 성공한다는 사실 말이네.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일한 결과 여수대표 언론으로 우뚝 섰네. 나라에서도 돕겠다고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하고 나섰네.

말이 나온김에 우리 후배들 하는 꼴 좀 보게나.
얼마 전 순천의 하이스코 비정규직 크레인 점거 때 후배들은 현장에서 파김치가 되도록 뛰었다네.

새벽 4시에 우유를 돌리고 취재현장에서 저녁 12시까지 뛰는 꼴사나운 후배기자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

물론 본인은 행복했겠지만 지켜본 선배 입장에서는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네.

누렇게 뜬 얼굴을 보는 순간 안쓰럽기까지 하지만 ‘네 놈 팔자려니’하고 생각할 때가 더 많았다네.

때로는 눈발이 내린 머리를 들이 밀며 “너도 기자 10년만 해봐라”고 큰기침도 했다네.

여보게 친구!
얼마전 여수산단의 노동조합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네.

낯선 아가씨의 “여보세요, 신문을 보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지로용지가 왔네요. 우리는 구독료를 줄 수가 없어요. 신문 보내지 마세요”라며 차갑게 내던진 전화 때문에 속상했네.

사실인즉 전임 조합장의 요청에 의해 신문을 보냈는데 파업투쟁으로 옥고를 치루는 과정에서 새로 구성된 집행부가 구독을 중지한 것이지.

물론 여러 가지 속사정이 있겠지만 전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라는 생각 때문에 서운할 수밖에 없었네.

혹여 노동조합이 지역신문의 열성을 두고 언론 영향력을 키워 회사측에 빵을 키우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스럽네.

친구! 변혁운동, 학생운동을 했던 후배기자들의 심정은 어떠할지 자네는 알지 않겠나. 지역신문이 한눈팔지 않기를 바라는 만큼 관심도 가져주길 기대해 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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