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요것 없으면 못 살았지”
“옛날에는 요것 없으면 못 살았지”
  • 강성훈 기자
  • 승인 2005.11.25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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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덕충동 연탄공장
   
▲ 덕충동 연탄공장단지에서 막 나온 연탄을 옮기고 있는 노동자.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한 겨울 서민들에게 온기를 전하는 연탄을 찾아 덕충동으로 향했다.
“금일가동 제2공장”
기자는 시커먼 길을 따라 덕충동 61번지에 자리한 연탄공장단지를 들어섰다.

굳게 닫혀버린 철문, 깨진 콘크리트 길, 높게 쳐 올린 찢겨진 그물망,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허름한 담장은 누가 보아도 연탄공장임을 알 수 있었다.

곧 쓰러질 듯이 서있는 함석간판을 보면서 연탄공장은 질긴 운명을 그렇게 이어왔음 알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연탄난로가 뿜어내는 훈기에 몸을 의지한 채 바삐 계산기를 두드리는 여직원과 관리직원이 업무에 열중이다.

“요새 누가 이런 공장에 찾아나 온다요. 10년전부터 해마다 줄어들기 시작하드만 이제는 영 살아날 기색이 안 보이요”라며 기다렸다는 듯이 장황한 설명에 나서는 장인익 부장.

“직원 하나에 상무이사니 사장이니가 무슨 소용이여, 그나마 올해는 기름 값이 올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정도 생산이 늘었어요”

“20여년 전 시내 곳곳에서 소규모로 운영되던 연탄공장을 합쳐 연탄공장단지를 조성한 곳이 이곳이요. 당시만 해도 연탄장사 해서 먹고 살만했제, 공장도 쉴틈 없이 돌아갔고”라며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들이 장씨의 담배연기 속에 그려진다.

공장 설립 30여년 명맥만 유지 ‘냉랭’

   
▲ 금일 2공장 가동이라는 팻말이 연탄공장의 현재를 말해주고 있다.
덕충동 일대에 연탄공장단지가 들어선 것은 1979년, 당시만 해도 5개의 공장이 매일같이 가동됐다. 이곳 연탄공장단지에서 생산되는 연탄은 여수에서 고스란히 소비됐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기름보일러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연탄업계는 점차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었다.

연탄소비량이 급격히 줄면서 공장도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해 현재는 2개 공장만이 운영되고 있는 실정. 그나마 2개 공장이 순번제로 운영되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것.

한 개 공장에서 3만장이상 생산되던 것이 10년전부터는 급격히 줄어들어 현재는 2개 공장에서 생산되는 양을 합쳐야 4만여장에 불과하다.

“말그대로 격세지감이여. 저기 쌓여있는 원자재를 보라고. 예전에야 쌓아올린 석탄이 웬만한 큰 산 하나 크기만 했어, 지금은 작은 무덤 정도에 비할 수나 있을라나...”

석탄 재고량은 1만톤에서 2만톤 가량이었지만 현재는 10분 1수준에 불과하다. 한창 호황을 누리던 80년대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석탄 생산지인 강원도에서 직접 선박을 이용해 실어오곤 했다는데 요즘은 대부분 화순탄광에서 보급한다.

보급방식도 시대흐름과 함께 많이 바뀌었다. 각 가정에 배달해 주던 일종의 보급소 개념이 사라지고 판매업자가 공장에서 공급받은 연탄을 직접 가정까지 공급하고 있다. 이처럼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수십년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4년전 1백92원이던 장당 공장도 가격이 현재도 똑같다. 정부가 관리하는 원자재 값의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오름폭도 거의 일정하거나 변동이 없다.

“4년전에는 1백75원이었죠. 그가격이 10여년 넘게 이어져 오다가 다소 오른 것이다”는 설명이다. 소비자 가격은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형성된다. 고지대는 판매업자의 판단에 따라 또다른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정부가 석탄산업에 대해 일정부분 보조해주는 상황에서 쉽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 연탄공장단지 전경
고유가로 지난해보다 소비량 소폭 상승

여수에서 생산되는 연탄은 여수뿐만 아니라, 순천, 광양, 고흥 등 전남동부권은 물론이고 경남 남해와 하동까지 보급된다. 수년전만해도 순천과 벌교에 연탄공장이 있었지만 문닫은 지 오래다. 2개공장 합쳐서 8명의 생산직 직원들이 움직이고 있다.

공장에 들어선지 30여분만에야 트럭 한 대가 공장안으로 들어선다. 새벽 무렵 1천장을 싣고 나가 이제야 돌아온다는 김씨다.

“10년정도 됐제라. 시작할 때만해도 제법 수입도 짭짤했는디. 늦게 시작한 일이라 쉽게 놓지도 못하고 온 게 지금 이 모양이요”하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여느해보다 조금 이르게 찾아온 겨울. 활기에 넘쳐야 할 연탄공장이 쉽사리 문을 닫아버리지도 못하고 명맥만을 유지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버린 현실에 연탄불꺼진 냉방마냥 씁쓸함이 밀려든다.

“그래도 올해는 좀 할만 하구만. 지름 덕분에 연탄 때는 사람들이 다시 늘었어.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라며 씁쓸한 웃음을 토해내며 운전대로 향하는 김씨의 어깨너머로 쉼없이 돌아가는 연탄생산 라인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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