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의 통영행과 여수의 자성
거북선의 통영행과 여수의 자성
  • 이상율
  • 승인 2005.11.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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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눈] 이상율 <주필>
서울 한강시민공원 이촌 지구 나루터에 놓여있던 거북선이 지난 9일 출항식을 갖고 한산대첩의 전승지인 통영으로 갔다.

거북선의 통영행은 지난 1월 서울시와 통영시가 한산도에 거북선을 전시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거북선의 통영 입항은 전승 지였던 통영으로의 거북선 귀향이라는 의미 외에도 민간선박의 비무장지대의 통과라는 냉전 시대 화해의 뱃길을 여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해 전 국민의 관심 속에 항해가 이루어졌다.

거북선을 통영으로 불러들인 통영시는 이 거북선을 한산대첩 유적지인 제승당(한산도)을 오갈 수 있도록 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고취시키는 현장체험의 장 등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거북선 통영행 이벤트는 한편의 정치적인 제스처 일수는 있지만 이를 지켜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가누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거북선을 만들었던 여수 지역 사람들일 것이다.

난중일기에 보면 임진년 2월 8일 “이날 거북선에 쓸 돛베 29필을 받았다” 4월 12일 “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의 지현자포를 쏘아보았다.”라는 거북선 창제의 기록이 있으며 국사학자 이선근은 대한국사 5권에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그 무렵 여수에 본영을 두고 그 의 속진을 정비 강화하는 한편 유명한 거북선을 건조하여 1592년 음3월 27일(양5월8일)에 진수시키고 그 배에 장치한 지자포, 현자포의 시사를 음4월 12일에 마친 것 밖에는 달리 이렇다 할 방비가 없었다”고 기술함으로써 여수가 최초의 거북선을 만든 고장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KBS의 “불멸의 이순신”의 촬영장이 전북부안이었던 것에 이어 한강의 거북선이 통영 행이 됨으로서 거북선 최초의 창제지(創製地)임을 자부심으로 삼아온 이 지역주민들에게는 적잖은 상처를 준 것이다.

이 고장의 역사적 사실을 남의 잔치에만 내어 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캐고 가꾸어 향토의 자랑으로 부각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의 심볼이나 마크 향토물산의 상표 등에도 거북선 명칭 사용을 촉진하고 우선 거북선 상징화에 가장 확산성이 높은 여수 거북선 축제에도 거북선과 관련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2003년 우여곡절 끝에 진남제를 여수 거북선 축제로 그 명칭을 변경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진남제 보존회는 아직까지도 여수 거북선 축제라는 명칭 앞에 진남제를 삽입하는 등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명확한 조치가 필요하다.

이 충무공의 구국정신과 거북선 창제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매년 개최되는 진남제는 기득권 세력의 독점으로 인하여 병들어 있지만 개혁되지 않고 과거만을 답습함으로써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전국 최우수 축제에서 지역축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보존회가 변화에 적응하지 않고 기득권만을 고집하는 경우 세계적인 축제를 위해서는 관. 민 합동기구 설치 아니면 독립된 거북선 축제 위원회를 따로 조직하여 추진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축제의 세계화를 위하여 부실조직의 개편 없이는 예산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정상화를 일군 남원 춘향제, 전국의 유명 인사를 망라하여 축제 위원회를 구성하여 20억의 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나선 통영의 한산대첩제를 타산 지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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