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길의 땅이야기 58] 동문동
[박종길의 땅이야기 58] 동문동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11.0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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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지역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청년회관
관문동은 좌수영 시절에는 <동문밖>이라고 하다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시 관아(官牙)가 있던 지역이라는 뜻으로 아동(牙洞) 이라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제이름 변경지침에 따라 아동을 관동(官洞)으로 고쳤고 1953년에 동문동과 나뉘어 있던 곳을 통합하여 관문동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되었다.

관문동에 있는 흙산이라는 곳은 1920년대 말기 철도를 건설하는데 많은 량의 흙이 필요하여 나즈막한 야산을 철도공사에 사용하게되면서 흙산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관문동은 1980년대까지도 시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밀집하여 여수의 행정중심지였지만 시청이 이전 하면서 그 이름의 의미를 잃고 말았다.

여수경찰서 건너편 작은 골목 사이에 있는 청년회관건물은 옛 좌수영성의 연못이었던 덕지 자리에 일본의 제국주의에 벗어나기 위한 이 지역 청년들의 독립의지를 모아서 세웠던 건물이다.

1921년 손을 맞잡고 돕자는 뜻의 맞돕회를 조직한 김백평씨를 비롯한 청년들이 여수의 계몽운동을 펼치면서 교육공간확보를 위해 지었던 이 건물은 광복 후 도서관과 문화원 등으로 활용되다 역사적의미를 살려 등록문화제 3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시립국악단이 사용하고 있다.

고소동은 좌수영 시절에 만들어진 고소대가 있어서 이름지어진 동이다. 고소대는 오왕 부차와 서시의 일화로 유명한 중국의 고소대에 견줄만 하다하여 이름지었던 좌수영성의 장대로 성을 지킬 때 장수가 지휘를 하는 지휘소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전라좌수영은 매영성(梅營城)이란 별칭을 갖고있는데 봄이면 고소대 주변에 매화가 만발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임지로 떠나는 어느 좌수사는 고소대에 활짝 핀 매화가 눈에 밟혀 가던길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떠났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최근 매화 나무를 대규모로 식재하여 매화마을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면서 관광소득을 올리고 있는 이웃 광양의 시골마을을 생각하면 매영이라는 이름까지 가졌으면서 아름다운 여수의 매화를 지키지 못한 아쉬움은 크게만 느껴진다.

고소대 주변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신사가 설치되어 수난을 겪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충무공 대첩비를 고소대에 세우게 되었다.

대첩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서울로 옮겨져서 그 존재를 잃어버렸다가 광복후에 경복궁 근정전 뜰에서 발견이 되었다고 알려지자 여수의 지방유지들이 발벗고 나서서 신사가 있던 고소대에 비각을 세우고 다시 세웠던 것이다.

보물제 571호인 충무공대첩비는 길이 3.6 미터 폭 1.27미터 두께 27cm로 국내에 있는 비석 중 가장 큰 규모인데, 충무공을 흠모한 황해병사인 유형이 황해도산 돌을 보내 김상용이 글을 쓰고 이항복이 비문을 지어 1615년에 좌수영의 입구인 동령(연등동)에 세웠던 것이다.

대첩비각에는 보물 1288호인 타루(墮淚)비가 함께 서 있다. 타루비는 충무공의 덕을 흠모하던?? 부하들이 건립하였던 비로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면 항상 눈물이 떨어져진다는 뜻의 타루비를 세웠던 중국 삼국시대의 양호의 고사를 인용하여 1603년에 세워진 비이다.

종화동은 자산을 끼고 형성된 갯마을로 웃종포와 아랫종포의 이름이 있으며 본래의 이름은 쫑개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종개는 ‘종고산 아래에 있어서 종개라 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작거나 종속되었다는 뜻을 가지는 의미로 큰 포구 옆에 딸려있는 작은 포구라는 뜻이다. 이순신의 일대기를 소설로 썼던 춘원 이광수는 종포를 새복개로 기록하기도 했다.

일제 때는 웃종포를 종포동, 아래종포를 평화동으로 부르다가 해방후인 1953년에 두 곳을 합치면서 종화동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종화동의 뒤쪽에 솟은 자산은 자주빛 자(紫)를 서서 자산(紫山)이라고 하는데 해가 뜰 때 햇살의 변화로 산봉우리가 아름다운 자색으로 물들어 자산이라 하였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한자말을 풀이하여 지어낸 이야기이다.

자산은 고지도에서 보면 척산(尺山)으로 표기하고 있고 이 지역사람들에게도 재산이란 이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어 본래의 이름은 재산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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