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문화, 이대로 좋은가
관객문화, 이대로 좋은가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10.2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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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in] 고한석 <논설위원>
여수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음악·미술·연극·무용·시화·국악·서예 등 순수예술 공연·전시에 지원한 금액은 4억76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건수와 금액은 다른 지방의 중소도시에 비해 결코 뒤지는 수준이 아니다.

금년도 작년 못지않게 지원할 것이라는 여수시의 계획을 상정해보면 숫자상으로만 풀이해도 1년 내내 1주일에 1회 이상 각종 공연과 전시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새삼 반갑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작 공연장과 전시장을 둘러보면 이 같은 생각은 급전직하 반감되고 만다.

관객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공연이 무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근한 예를 들어 지난 14일 시민회관에서 개최된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자:보리스 페레누) 초청연주회는 주·야 2회 공연이 있었는데 오후 3시의 경우 2층엔 아예 자리가 텅 비었고 1층도 듬성듬성 앉아 있는 적은 관객들로 연주자들을 맥 빠지게 했다.

그래서일까, 제1바이올리니스트와 옆 연주자가 키득키득 웃으며 연주하는 촌극마저 눈에 띄었다. 참으로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4 500만원을 들여 초청했다는 당국자의 친절한 설명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공연시간이 평일 오후 3시라는 부적절한 탓으로 돌린다 하더라도 여타의 다른 공연 이른바 주말 저녁 시간대의 공연에 가 봐도 관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예술의 기능이 ‘교훈이다’ ‘아니다 쾌락이다’라며 호사가들 사이에서 오랜동안 해묵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중요한 사항이 아닌 것 같다.

사는 게 매끄럽지 못하고 팍팍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까닭모를 우울증에 사로잡히거나 대상을 겨누기 힘든 노여움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래서 가슴은 허전하고 머리는 명료하지 못하며 정감마저 매마를 때 우리에게 신선한 위안과 새로운 활력을 선사하는 감동으로 다가오는 게 예술의 힘이 아닐까.

그래서 또 예술가들이 존경의 대상이 되는 거고. 사실, 세계사의 뒤안길을 걷다보면 한 국가의 자부심으로 추앙받는 위인, 외부의 압제통치로 갈기갈기 찢긴 민족혼을 불러일으킨 큰 사람, 잔인무도한 학살을 고발하고 항거한 열혈 인들이 정치인이나 혁명가라기보다 예술가라는데 새삼 놀란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시공을 초월한 작가, 대자연과 같은 작가, 그의 보고(寶庫)가 인도와도 바꾸지 못할 작가라는 극찬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은 성경 다음으로 전 세계에 많이 읽히고 팔리고 있으며 그의 작품전집을 자기나라 언어로 번역 출간한 나라가 문화선진국으로 대접받는 형국이니 말이다.

체코의 민족음악가 스메타나는 자신의 조국이 오스트리아의 압제통치를 받게 되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깊은 신음과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있을 때 교향시<나의조국>을 발표하여 꺼져가는 민족혼을 일깨우고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그는 조국의 자연과 전설과 역사를 각각 다른 6곡의 교향시에 담아 찬미했는데 그 음악의 호소력과 장중함은 비단 체코 국민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많은 나라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미술의 거장 피카소도 다르지 않다. 자신의 조국 스페인이 군국주의 500년을 이어오면서 나치와 합작하여 독일 공군이 바스끄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까를 무차별로 폭격, 시민 수백 명을 학살하자 그 비보를 빠리에서 듣고 그 유명한<게르니까>를 그린다. 가로 780센티 세로 350센티의 거대한 화폭에 희생자들의 처절한 절규를 담아 세계에 고발한 것이다.

장황하게 예를 든 것은 그들이 이토록 존경과 사랑을 받는 위인으로 대접받는 것도 바로 그들의 작품을 사랑과 관심 깊은 눈으로 보아준 관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여수가 문화의 불모지니 어쩌니 하는 자조 섞인 말을 쉬 듣게 된다. 참으로 오랫동안 듣는 지겨운 말이다. 그 미망에서 깨어 날 때가 훨씬 지났다.

그 첫걸음은 뭐니 뭐니 해도 관객 문화의 정착이 아닐까. 공연·전시장을 찾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적극적인 관심이 아쉽다는, 참으로 아쉽다는 얘기다.

공연·전시장을 찾자. 하여 미구에 여수의 셰익스피어, 여수의 스메타나, 여수의 피카소를 배출하여 가슴 펴며 살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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