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난중일기] 이상훈<논설위원, 여수YMCA사무총장>
10.19여순사건이 발발한지 57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여 위령제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전남동부지역의 여러 사회단체 주관으로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아직 자주독립국가로서의 체계를 다잡지 못한 1948년, 봉건주의와 일제식민잔재의 사슬을 끊고, 새롭게 우리 민족의 앞날을 개척해야할 이 시기에,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두 개의 이념으로 나뉘어 반목과 갈등이 창궐하고 있었다.
이 갈등이 분출한 것이 제주4.3항쟁이며, 이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군대가 여수에 집결했다가, 동족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 10.19여순사건이다.
제주와 여수순천에서 잇따라 일어난 이 일로 인해 일어난 가장 큰 불행은, 무고한 양민들이 수만 명이나 학살된 것이다. 반역의 혐의가 있는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그를 둘러싼 불특정 다수의 수백, 수천 명이 아무런 죄도 없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죽어간 것이다.
이러한 희생을 제물삼아 당시 민족정권은 장기독재정권으로 들어섰고, 4.19와 지난한 군부독재, 5.18과 6.10항쟁 등 현대사의 굴곡을 양산해냈다는 점에서 제주항쟁과 여순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기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우리가 57년이나 지난 일임에도 이를 잊지 않기 위해 기념행사 등을 하는 것은, 이렇듯 하나의 사건에는 그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정신으로 인해 후대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새롭게 깨닫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한번 일어난 불행은 그 원인과 결과를 철저히 가려내어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57년 전 여순사건을 통해 배워야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시대적 그늘 뒤에 숨어 무자비하게 저질러진 폭력과,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죽고 죽이는 야만적인 행위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는 교훈이다.
특히 국가공권력이 체제유지와 치안을 명분으로 무고한 자국민을 죽여도 된다는 발상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일찍이 10.19 여순사건과 같은 국가폭력에 대한 단죄를 했었더라면 5.18광주학살과 같은 끔찍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과거사법이 통과되어 지난 얼룩진 역사를 바로세울 수 있게 된 것은 그런 점에서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강정구 교수의 6.25전쟁관련 발언 때문에 온 나라가 다시 떠들썩거리고 있다. 시대를 거스르는 해프닝이라 여겨져 씁쓸한 생각이 앞서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해가는 과정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권력이 결정하면 모든 것이 획일적으로 정리되었다. 만일 이를 따르지 않으면 곧바로 폭력이 뒤따랐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리에 토론과 자기주장이 허용되는 것을 보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한 가지 본질적인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인권이나 사상의 자유는, 국가권력의 체면이나 전통유지 따위보다 훨씬 소중하고 고귀한 가치라는 것이다.
백주대로에서 대통령을 욕해도 처벌받지 않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물이나 사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야하는 세상도 끝이 나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10.19여순사건과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57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가 여순사건을 다시 생각하고, 깊이 생각해봐야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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