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길의 땅이야기54] 광림동
[박종길의 땅이야기54] 광림동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10.0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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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동은 1997년 7월 25일 여수시의 효율적 행정서비스를 위한 행정동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법정동인 광무동과 오림동을 통합하여 동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취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오림동의 마을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온다.
첫 번째는 구 씨와 임 씨, 정 씨 세 성받이가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고 살아서 세 성씨의 이름을 따서 처음 마을 이름은 구림정이라 했단다. 그러다가 구씨가 마을을 떠나게 되자 좌수영의 중심에서 오리가 되는 거리에 있어 오림정이라 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는 마을에 다섯 그루의 정자나무가 있어서 오림정이라 했다는 이야기인데 1789년의 호구총수 기록에도 오림정 마을은 나타난다.

오림동의 정자나무는 여러 명칭이 전해진다. 호부래비정자나무, 홀아비정자나무, 독모정 (獨慕亭, 獨母亭)등인데 이런 이름들은 오림동마을에 있었던 고인돌 때문에 지어진 명칭으로 보인다.

여수지방에 고인돌이 집단으로 있던 지역은 <돌(독)정자>나 <돌(독)쫑지>, <독쟁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렀는데 이런 지역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석정(石亭)으로 많이 기록했지만 돌로 된 모정으로 해석되는 독모정은 음을 빌어 와 표기를 했던 모양이다.

오림동의 고인돌은 지금은 자리를 조금 옮겨 진남경기장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데 여수 고인돌 중 그 가치가 매우커서 지방기념물 150호로 지정되어있다. 이는 고인돌 덮개돌 표면에 선사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암각화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며 큰 칼과 인물상이 배치된 그림이 새겨져있어 고고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림동의 주목할 만 한 유적에는 동북쪽 재산(尺山)에 있는 산성 <자산산성>이 있다.

자산산성은 산에 옛 산성이 있어서, 성의 옛 말인 재가 있는 산이란 뜻의 재산에 성이 있어서 부르게 된 이름으로 제대로 그 뜻을 표현한다면 성산(城山)으로 표현해야 맞는 표현이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지명어로 쓰이는 한자는 이두문 표기 방법과 같이 한자의 뜻은 의미가 없이 음(音)이나 훈(訓)으로 발음하게끔 표기를 하였으나 이를 보는 사람들은 한자의 뜻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지명어의 오역은 많은 곳에서 발견이 된다. 자산산성의 경우에도 재산은 尺山으로 기록되고 이는 다시 ‘척산’이라 읽게 되면서 본래의 성이 있는 산의 뜻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자산산성은 시외버스 정류장 서북쪽의 높이 100여 미터의 낮은 산 정상에 둥근 띠를 두른 모양으로 만들어진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 264미터의, 안과 밖에서 돌로 쌓은 협축식 산성이다.

그동안 이순신 장군이 쌓았다는 전설과는 달리 건물 터 3곳과 많은 량의 기와조각과 토기들을 조사한 결과 전형적인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밝혀져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진다면 그 시대의 유물유적과 함께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복원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광무동은 활터가 있어 ‘사정(射亭)’이나 ‘활터’로 불러오다 일제강점기 때는 <궁(弓)동>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최고의 수군이었던 전라좌수영의 수군이 활쏘기를 하였던 활터가 있던 지역이 이 곳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틈만 나면 활터에 나가서 활쏘기를 했던 기록이 있어 전시에 대비하고 준비했던 장군의 풍모를 엿볼 수 있는데, 광무동의 이름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이 담겨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여수 문화의 상징인 여수시민회관과 진남문예회관이 광무동에 위치하게 된 점도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과 비교해 바라보니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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