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종길의 땅이야기 53] 여서동
[빅종길의 땅이야기 53] 여서동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9.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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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에서 가장 많은 25,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여서동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텃골과 한재, 돌고개 마을을 합쳐 정한 여서리란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다.

좌수영을 여수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면서 여수의 서쪽에 위치한 이 지역을 여서리(麗西里)라 칭(稱)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여수의 변두리 지역으로 주민 대부분이 농업을 위주로 살아왔는데 1980년대 택지로 조성되어 시가지가 만들어지면서 지금은 여수의 가장 큰 번화가로 탈바꿈 되었다.

<텃골>은 경남아파트와 구 여수시청사가 자리 하였던 마을로 지금도 이 일대의 여러 상호에서 만나볼 수 있는 땅이름으로 <텃골>을 한자로 옮긴 기동(基洞)이란 이름으로도 많이 불려진다.

석현(石峴)은 <돌고개>를 한자로 옮긴 이름으로 고개 마루에 고인돌이 많아서 지어진 땅이름이다.

텃골과 돌고개 마을 남동쪽에 자리 잡은 장군산에는 많은 바위들이 있어서 다양한 이름과 전설이 함께 전해온다.

마당바위, 덕석바위, 장군바위 등의 이름과 함께 흥미를 끄는 굴등바위의 전설이 전해 온다. 전설은 오동도가 있는 종포까지 이어진다는 긴 굴이 있는 산등성이 굴등에는 작가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소설 <큰 바위의 얼굴>에서와 같이 사람의 얼굴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바위와 같은 모습의 성인이 텃골 마을에서 태어날 것이란다.

이 바위 주변에는 성인이 공부할 의자바위와 책상바위의 까지 있다고 하며 지금은 바위아래에 대학과 고등학교도 자리 잡고 있고, 여서동이 신도심으로 개발되면서 아파트와 주택단지가 주를 이루고 있어 여수 출신의 위대한 성인의 출현도 기다려진다.

구봉산 서쪽 산허리의 한재 마을은 지금은 신월리로 부르던 곳에 자리했던? 신근정, 봉양 마을로 이어지던 큰 고개 <한재>에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부르던 이름으로 한자이름 대치(大峙)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반 일본군의 비행장이 건설되고 군인이 거주 하면서 한재 고개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고 대신 구항으로 이어지던 고개를 한재로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터널로 이어진 이 고개는 본래는 영(좌수영)으로 가는 고개란 뜻으로 영고개(영꼭-연꼭)라 했지만 고개를 재라고도 했기 때문에 ‘영곡재’,‘연곡재’로 불려졌다.?

여서동 주변에 전해오는 옛 이름은 주로 바위나 옛 터의 이름으로 한가한 농촌마을이 선하게 그려지는 이름들이다. 지금은 문수동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아름다운 여수의 풍경에 걸 맞는 여수의 멋있는 문화가 녹여있는 삶터가 되어 아름다운 이름으로 후세에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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