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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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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9.0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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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사랑하며] 임채룡 <한국세무사협회 총무이사, 소라면 덕양>
   
모처럼 만에 고향을 찾았다.
여름휴가를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여유롭게 보내기 위함이 아니다. 벌써 수년째 홀로 되신 아버지가 그래도 시골이 좋다며 고향에 있는 동생네에서 기거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제수씨로부터 ‘아버님도 찾아보지 않는다’는 구설을 들을까 해서이다.

바다를 매워서 도로를 건설하는 중이라서 그런지 차가 지날 때 마다 흙먼지가 인다. 옛 모습이 많이 가셨다. 그러나 동네로 향하는 길가 밭에는 키 큰 옥수수가 싱싱한 넓은 이파리 속에 알통을 불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먼 바다는 파란하늘보다 더 푸른 바닷물결이 바위에 부딪치며 하얀 거품을 토해낸다. 가끔씩 갈매기가 끼룩거리면서 하늘을 비행하는 가운데 바다와 하얀 모래 그리고 소나무와 논밭. 그 속에서 등이 휜 농부가 열글고 있는 곡식을 손질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기억 속의 고향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 소리가 들려서인지 키가 한뼘도 더 넘게 줄어들어 보이는 아버지가 꾸부정한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며 대문 밖으로 나오셨다.

말복이라 그런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햇볕이 따갑게 쏟아진다. 동생네 집은 지대가 조금 낮은 곳에 있어 더욱 그렇겠지만 집안이 온통 찜통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집안이 더워서 교회 앞 그늘로 가죠’하며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이 들락거리는 바다가 보이는 교회당 앞 느티나무 그늘로 향했다.

지팡이에 의지하는 걸음걸이가 마른 풀잎처럼 가볍다. 그래도 여름날 논밭에서 일을 하시다가 점심을 드시러 집으로 오실 때면 무쇠 같은 팔둑에 시퍼런 힘줄이 돋아나던 분이셨다.

또한 지게에다 집채만큼 풀 짐을 지고 오실때면 마치 어린 눈에는 하늘의 산장처럼 힘이 있어 보였던 때도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칸이 의자에 앉아 몇 마디 말을 건 넌 후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이 없기 보다는 그 많은 말들 중에서 아버지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한동안을 침묵으로 보내가다 내가 물었다.

“아버지!” “왜”
“옛날 생각이 나세요”
“아니, 통 생각이 안나”
“일본 제국시절에는 징용도 갔다고 했잖아요, 기억 안나세요”
“아, 그래 그거 북선으로 징용 갔을 때 삼십리 굴을 파고 물길을 잡아 들렀는데 그때는 참 무서웠어. 사라도 많이 죽고”

나는 혹시 기억의 줄기세포가 해될까 하여 다시 물었다.
“그럼 북선은 어디에요”
“글쎄, 기차를 타고 이틀인가 삼일 간 것 같은디 어딘지 몰라. 그때 탑거리 공샌이랑 같이 갔는디 공샌은 몇 년 전에 세상을 떴지 아마”
그리고선 우리는 또 한동안 말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나에게 있어 어릴 때 보았던 고향의 풍광이 점점 사라져 간 것처럼 아버지에게는 삶의 기억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아버지의 사라진 기억 속에 나와 공유했던 시간들도 사라진 것이다.

그 속에는 내가 아버지에게 언젠가 꼭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므로 기억하지 못한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릴 때 몇 친구들과 단합하여 자신들의 수업료 영수증 고쳤고, 그 영수증을 초롱불빛 아래서 몇 번이고 다시 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 입맛을 몇 번 다신 후 에 영수증을 수납장에 넣었다.

이 일은 언젠가 기회가 오면 내가 잘못했다고 말해드리고 싶었던 일이다. 그러나 이제 그 시절 아버지의 시계는 녹슬었다.

점점 현재의 눈으로 보는 것만 느끼며 살고 계시는 모습이다. 해가 기운을 잃을 때 쯤 나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바다며 휘 하니 서울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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