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대학에서 벼룩시장을 열던 날
캄보디아 대학에서 벼룩시장을 열던 날
  • 최진희 시민기자
  • 승인 2005.08.29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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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앙코르 왓으로 유명한 캄보디아 시엡립 빌 브라이트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에 시장에서 물건 사고 파는 대화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실습도 하고 학생들에게 작은 이벤트도 열어줄 겸 주말 벼룩시장을 열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보내준 다양한 물건들을 펼쳐놓고 무조건 2천 리엘(500원)에 팔았습니다. 학생들이 팔고, 사고, 그 수익금으로는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이 신이 나서 물건을 팔았고, 사는 학생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벼룩시장 종료시간이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두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산 물건은 자기가 가지세요." 했더니 한 학생이 "그리고 돈도 줘야 되죠?" 하는 겁니다.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단돈 500원이 이 학생들한테는 부담일 수도 있겠구나. 물론 한국에서는 몇 만원씩에 판매되는 물건들이지만... 그래서 그냥 가지라고 했습니다.

오늘 특별수업을 잘 한 상으로 주는 거라고. 그런데 단 한 학생만 축구복을 가져가고 모두 안가지고 갔습니다. 돈이 없어서 사진 못하겠고, 이유없이 공짜로 받긴 싫다는 거였습니다.

캄보디아가 어려운 나라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가 무엇을 주면 그저 고맙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 갑니다. 그런데 대학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라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받는데 거부감도 있고, 자존심도 상한 것 같았습니다.

전에 한국에서 헌 사전을 모아와서 우수 학생들 나눠줄 때는, 전혀 거부반응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접근이 잘못 된 거 같았습니다. 우선 학생들이 벼룩시장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특별이벤트라고 말해도 그저 수업이라고만 생각한 듯 했습니다.

이 나라에도 대학들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수준이나 여러 가지가 우리나라 고등학교만 못한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금전적인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내 임의로 단돈 500원 시장을 개최한 건 큰 실수였습니다.

한국에서야 학생들에게 500원 주면, 화낼 일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 돈이 없어서 굶는 사람이 많습니다. 처음에 500원이라는 명제를 제시하고, 갑자기 공짜로 가지라니까 순간 학생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해서 안가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결국 그 날 벼룩 시장에서 남은 물건은 학교에서 일하는(청소 등) 분들에게 나눠졌습니다.

이벤트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마음만 아파졌습니다. 이 나라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대학캠퍼스의 느낌을 만끽하게 하려면 앞으로도 몇 년이 흘러야 할까?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자꾸 미안해집니다. 안다고, 안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너무 모르고 있는 우리 학생들...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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