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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의식의 비생산성
우월의식의 비생산성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8.25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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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고한석 <논설위원>
   
한글사전을 보면 우월감이란 <자기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자처하는 느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순연히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기준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원래 우월감(Superiority Complex)이란 말이 정신분석용어로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A·아들러가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에 따르면 <실제로 뛰어 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열등감을 과도하게 보상받으려는 심리에서 환각적으로 생각된 느낌>이라는 것이다.

혹독하게 말하면 또 다른 열등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도시보다 군소도시가 여러 부문에 걸쳐 발전 속도가 느린 것은 군소도시가 안고 있는 자체의 예산규모나 인적·물적 자원이 대도시에 대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데 있다는 견해에는 이견이 없다. 또 그로인한 근·원인을 찾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보다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그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를 활발하고 다양한 인적교류가 불가능한 어떤 문화적 한계성에서 도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보아진다. 바꿔 말해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교류가 막혀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제자와 스승이, 선배와 후배가, 직원과 사장이 얼굴을 마주하고 허심탄회한 열린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보화시대를 역행하는 이런 구태(舊態)는 진작 사라져야 마땅하지만 이상하게도 군소도시에선 아직까지 텃새나 토호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전통이나 권위라는 야릇한 옷을 입고 우월감에 사로잡혀 인적 교류의 문 앞에 떡 버티고 서있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남보다 뛰어난 재능과 재주를 발휘한 사람이 많다.

인간의 체력한계에 도전해 기록을 갱신한 스포츠맨, 일반인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세계의 지붕과 극지를 정복한 알피니스트, 탁월한 감각과 창의로 뭇사람의 감동과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예술가, 인간의 난치병 혹은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신기원을 이룩한 과학자, 같은 조건과 여건에서도 빼어난 응집력과 기술력을 발휘하여 재부(財富)·권세(權勢)를 이룩해 공익에 봉사하는 사람 등 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일컬어 서슴없이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고 칭송한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스스로를 그렇게 불러주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그러한 겸손과 절제가 있었기에 그들이 그런 위치를 점유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룩한 것을 돌아보는 과거회귀 형(型)이 아니다. 제 ! 공과(功過)를 추스르기엔 너무 <젊은> 사람들이다.

나이가 젊다는 게 아니라 의식이 젊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은 앞만 보고 질주하는 미래지향 형이다. 그들은 자신의 안위와 영달에 급급하지 않는다.

우월감은 그들과 반대편에 선 무리 속에서 발견된다. 얇고 얕은 지식과 학식을 무슨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양 내세워 대중 앞에서 억지권위를 만들어보겠다는 어용지식인들, 현장참여는 하지 않으면서 뒷전에서 비방만 해대는 독설가, 기득권에 안주한 채 실력 있는 동료와 후배 그리고 신진의 등장을 실눈 뜨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놀부 심사의 시기(猜忌)꾼, 그들의 수도 셀 수없이 많다.

그래서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라는 조상들의 경구(驚句)가 생겨났을 것이다.

우월감이라는 특권의식에 젖어있는 이들의 치기(稚氣)로 그 음영이 우리사회에 알게 모르게 짙게 드리워져 있다. 폐해 또한 크다.

자신의 존재를 타인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생리적 본능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욕구야말로 매사의 성취동기로 작용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욕구 자체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아집(我執)이요 독선(獨善)이다. 고집이고 독단이다. 소통을 거부한 폐쇄요 타협을 비겁시한 용렬함이다. 전체를 위한 하나가 아니라 하나를 위한 전체로 둔갑되는 비민주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할 뿐더러 요구한다.
다양한 계층의 활발하고 열린 인적교류, 그 문 앞을 가로막고 선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고하고 싶다.

나르시스트들이나 가질법한 그 값싼 우월감을 과감히 벗어 던지라고.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벗어던진 바로 그 자리에 한 차원 높은 참다운 소통의 결실이 맺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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