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60년 의미, 통일 실천하는 것
해방 60년 의미, 통일 실천하는 것
  • 강성훈 기자
  • 승인 2005.08.17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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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지역 항일운동 이끈 백인렬(93) 옹
   
“특별할 것도 없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그런 생각을 가졌을테니”

광복 60주년을 맞아 항일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의 포상 대상자로 선정된 백인렬(93)옹.

올해 광주·전남지역 독립유공자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그에게 60주년이란 의미는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의미를 부여하고자 야단들이지만 생활속에서 해방의 의미를 깨닫고 소중한 줄 알면 되는 거야”라며 형식적 접근을 경계한다.

1913년 당시 여수읍 여서리에서 태어난 백옹은 여수공립수산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던 30년 3월 항일 단체인 ‘독서회’를 조직해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당시엔 학생들의 모임 자체가 불가능했다. 주로 여수 종고산이나 구봉산 등지에서 비밀리에 회합을 갖고 학생운동을 논의했고, 학내에서는 항일운동 서적을 돌려 읽으면서 조선말 사용운동을 펼치기도 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 한다.

백옹은 윤경현 등 7명과 함께 독서회 창립총회를 주도해 독서회를 조직했고 간부로 활동하면서 항일운동에 적극 나섰다. 당시 1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을 가입토록 했으며 인원이 점차 늘어나자 5개반으로 편성해 1학년생 대표를 맡기도 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항일사상을 전파하는데 주력하는 학생운동을 펼칠 수 있다는 데 큰 긍지를 느꼈다"고 말한다.

“가족들도 몰랐다. 독서회 활동 중 일본 나고야까지 가서 독립운동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는 백옹이다.

하지만 백옹의 독립을 위한 활동은 이듬해 9월 일본경찰에 발각돼 순천경찰서에서 1년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당시에는 형무소가 없어 전남 동부권의 독립인사들 대부분이 순천경찰서에 잡혀와 옥살이를 했다"며 "일제순사들의 물고문 등 온갖 고문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상을 준다니 쑥스럽다”는 백옹은 “해방 60년의 의미는 앞으로 펼쳐질 조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며 통일의 의지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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