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섬’에 살아 숨쉬는 선조의 ‘恨’
‘국경의 섬’에 살아 숨쉬는 선조의 ‘恨’
  • 박태환 기자
  • 승인 2005.08.17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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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신문의 대마도 상륙기] 조선통신사 행렬 담은 16.58m 두루마리 족자
   
▲ 이즈하라 민속박물관에 위치한 고려문
대마도는 우리민족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섬이다. 12회에 걸쳐 일본에 문물을 전한 조선 통신사 일행이 이 섬을 거쳐 지금의 동경인 에도로 들어갔고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남부 해안지역을 노략질하던 왜구의 근거지로 수회에 걸쳐 조정에서 정벌에 나섰던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대마도에는 한국과 관련된 수많은 유적들이 분포돼 있다.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는 대마도는 한국과의 거리가 불과 49.5㎞에 불과해 맑은 날이면 부산에서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섬이다.

이 섬에는 우리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숨쉬고 있어 일본의 섬이지만 일본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대마도 관광의 중요한 의미는 이러한 우리민족혼을 확인하는 것과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는 것이다.

   
▲ 고종황제가 사랑했던 덕혜옹주의 결혼기념비. 덕혜옹주는 당시 대마도주에게 정략결혼의 재물로 바쳐졌다가 비극적인 마지막을 맞았다.
구한말 항일운동가 최익현 선생 순국비도 있어

몇몇 역사관광 명소를 둘러보자.
나가사키 현립 대마역사민속자료관을 제일 먼저 둘러봐야 할 것이다. 이 자료관 입구에는‘조선통신사지비(朝鮮通信使之碑)’라고 새겨진 커다란 비석을 만나게 된다.

또 바로 옆에는 옛 이츠하라의 성문으로 에도시대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어 ‘고려문’이라는 명칭이 붙은 문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조선에서 간행된 ‘훈몽자회’가 보관돼 있고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인상적인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16.58m의 두루마리에 채색으로 그린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에는 관복을 갖춰 입은 우리 통신사가 8명의 일본인이 들고가는 가마에 올라 앉아 있고 그 뒤를 따라 말을 탄 통신사 일행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또 각각의 말에는 두 사람씩의 일본인들이 경마잡이를 하고 있다.

이 그림 한장만 보아도 일본인들이 우리 통신사를 얼마나 융슝히 맞이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인들로서는 우리 통신사들이 그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지대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이같은 칙사대접을 하지 않으면 안됐을 것이다.

고려문 옆에는 17세기 당시 일본의 한국 담당 외교관으로 국가간의 교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된 믿음이라고 주장한 ‘아메노모리 호슈’의 비가 세워져 있다. 아메노모리 호슈가 저술한 ‘교린수지’는 일본 최초의 한국어 교재로 명치시대까지 사용했다.

   
▲ 대마도 이즈하라항구 인근에는 조선통신사 행렬을 기념하는 부조가 도로변을 장식하고 있다. 그 뒤로 자위대 모집을 알리는 선전물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위시하는 듯 붙어있다.

일본 군국주의 대표하는 ‘만세키바시’ 다리

이즈하라의 수선사에는 구한말 대유학자이며 항일운동가인 최익현선생의 순국비가 있다. 최익현은 쓰시마에 유배된뒤 일본에서 경작한 식량을 거부한 일화로 유명하다. 끝내 쓰시마에서 죽은 최익현의 유해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슈젠지, 즉 수선사에 나흘 동안 안치된 후 부산항으로 이송됐다. 이러한 선생의 넋을 기리기 위해 순국비가 건립돼 전하고 있다.

조선통신사 행렬의 숙소로 사용했던 대표적인 곳인 ‘사이산지(西山寺)’도 꼭 둘러보아야 한다. 이곳 법당 내부에는 1m 정도의 고려불상이 안치되어 있고 바깥에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참모역을 담당했던 세이쇼 쇼타이의 동상이 함께 있다.

이 외에도 조선통신사 관련 유물 및 도쿠가와 역대 장군들의 위폐가 있는 일본 3대 묘지 중의 하나이며 국가지정사적지인 ‘반쇼인(萬松院)’도 가볼만 하다.

일본 군국주의를 볼 수 있는 ‘만세키바시(萬開橋)’는 1901년 일본이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동서를 연결하는 운하를 파서 군함과 전쟁물자를 운반하던 곳으로 최근 새로이 대형 교각을 만들어 둘로 나뉘었던 대마도를 연결하고 있다.

일본을 소개하는 책자에 종종 나오는 ‘와다쓰미진자(和多都美神社)’는 고대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짚어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은 산록지대에서 수렵을 통해 생활하던 일본 주민을 개화시키고 청동기문화와 도작문화를 이곳에 심어주었다. 현재 ‘와다’는 일본 고어로 바다를 뜻하며 이는 우리말의 바다와 같다.

‘美’는 ‘神’을 가르킨다. 오늘날 대마도에는 해신신사가 4곳이 있는데 이곳 ‘와다쓰미신사’가 일본에서 해신에게 제사지내는 발상지로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전라도 서해 남해안에 전해내려오는 각종 풍어제(용왕제), 서해안 별신굿 및 배연신굿, 위도띠뱃놀이 등과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바다에서부터 올라오는 5개의 문은 우리나라 선조가 건너오는 것을 반기는 형상을 하고 있다.

   
▲ 마쓰무라 요시유키 이즈하라 시장과 간담회를 열고 있는 대마도 방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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