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뜨거믄 지름이 바다에서 올라오요”
“날 뜨거믄 지름이 바다에서 올라오요”
  • 강성훈 기자
  • 승인 2005.07.28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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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악몽의 씨프린스호 사고 10년 … 현장을 찾아서
   
▲ 지난 22일 시프린스호 10주년 사업위원회가 사고 현장을 찾아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10년전 남해안 일대를 생물이 살수 없는 죽음의 바다로 만들었던 씨프린스호 좌초,
그 기나긴 시간동안 어민들의 가슴은 시꺼먼 기름 덩어리 만큼이나 녹아 내렸다.

22일 10년의 세월을 더듬기 위해 전문가와 시민단체, 회사, 방제작업 관계자들이 소리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어쩌면 이들의 발길은 어민들의 시꺼멓게 타들어간 가슴을 들쑤시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은 과거의 회상을 떠올리기 좋은 분위기라도 연출하려는 듯 연한 농무 속에 햇볕을 비추고 있었다.

1시간여를 숨가쁘게 내달려 씨프린스호가 동력을 잃었던 지점인 작도에 다달았다. 작도는 10년의 세월을 잃지 않았다는 듯 홀로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속병을 앓고 있는 아름다운 파도와 섬들은 우리에게 쉽사리 당시의 정황들이 떠오르지 않게 했다.

유조선 씨프린스호는 7월 22일 태풍 페이가 북상하고 있다는 기상정보를 입수하고 피항하기 위해 배를 옮겼다. 서진하려던 유조선은 이미 피항 시기를 놓쳤고, 23일 높은 파도와 강풍에 휩쓸려 작도에서 수중 암초에 충돌하고 만다. 이후 배는 계속 높은 파도에 떠밀려 소리도까지 밀려가게 된다.

■ 인재-자연재해 논쟁중

뱃전에서는 잠시 환경단체 관계자와 회사 관계자 사이에서 배의 진로 선택에 따른 예측판단 오류에 대한 논쟁이 오갔다. 여전히 작도는 옅은 안개속에 어슴프레 형체만 드러낼 뿐이다.

설전도 잠시 배는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20여분을 내달려 도착한 곳이 소리도.

10년전 어느 여름 밤 5천여톤에 이르는 거대한 기름덩어리를 토해내며 전국민의 가슴을 녹여 내린 곳이다. 행정선으로 20여분이었지만 동력을 잃은 유조선이 여기까지 밀려왔다면 수시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크나큰 재앙이 여수지역을 덮치기라도 하는 듯 혼란에 빠졌고, 그 와중에 수십명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뇌물사건에 휘말리면서 지역사회를 다시 한번 공허에 빠뜨렸다.

시발점이 됐던 소리도의 모습은 어떨까? 작도가 그랬듯이 유조선이 좌초됐던 소리도도 아무일 없었던 듯 아름다운 섬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배는 다시 머리를 돌려 서고지로 향한다.

서고지는 유조선 유류 오염사고로 가장 직접적이고 많은 피해를 입었던 지역이다. 사고후 환경단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이기도 하다. 시커먼 기름덩어리로 둘러 쌓였을 어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평온한 기운이 반긴다.

   
▲ 사고 당시 유출 된 기름제거에 동원됐던 서고지 마을의 김기섭씨가 당시 자신을 찍은 사진을 보며 그 때를 이야기하고 있다.
■ 마을에 간암환자가 급증

사업위원회가 마련한 토론장을 찾은 어민이 “지금도 뜨건 날은 물 속에서 지름이 올라오요”라며 불쑥 한마디 던진다. 그러더니 이내 사고당시 현장을 담은 사진집 속에서 기름을 걷어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며 쓴 웃음을 짓는다.

10년이란 시간의 무게였을까 사진과는 다른 모습을 한 김기섭씨는 “아이고 그때 생각하면 정신하나도 없어라”며 고개를 절로 흔든다.

김씨는 지금도 가두리 양식을 하고 있다. “작황이야 해마다 떨어지제라. 원인이야 알 수 없제만 지름 때문 아니겄소. 전문가가 아닝께 딱히 주장할 수도 없고라. 시방도 중선배들 소리도 부근에 닻내렸다 캐믄 기름덩어리가 따라올라온답디다”
“당시 3개월이면 복구될 것이라고 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징이 나타나고 있다”는 진광화씨. 그는 씨프린스호 얘기만 나오면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사고 발생 이후 시점부터 사고해역에서 유해성 적조가 발견되고 있다. 물론 정확한 연구자료가 없기 때문에 확실한 원인을 말할 수 없지만 추론은 가능한 것 아닌가. 이를 계기로 정부차원의 심층적인 연구조사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한다.

서고지에서는 사고 이후 방제 작업에 참가했던 마을 주민들이 간암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한다.

진씨는 “사고 이후부터 주민들 사이에서 간암 등 전에 없던 질병들이 크게 늘었다”며 이에 따른 연구활동도 적극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장답사에 동행한 해양독성학자이자 환경작가인 오트 박사는 유조선 전복사고인 엑손발데즈호 사건의 예를 들어 씨프린스호 사건의 경우도 비슷하다며 “정부차원의 구체적인 연구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며 자연환경 평가만 아니라 인체에 미쳤을 영향도 함께 조사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딱히 토론장이랄 것도 없이 현지 어민들의 실상을 듣는 자리로 정리됐다.

   
▲ 아직도 소리도 인근은 서너차례만 삽질해도 남아있는 기름덩어리들이 나와 당시 처참했던 모습을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
■ 서너차례 삽질에 기름덩어리

이번에는 자리를 옮겨 아직도 유징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역으로 향했다. 시야를 뿌옇게 흐려 놓던 안개도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목적지는 금오도 유송리 연목마을이다. 이동하는 도중 “선발진에서 몇 군데를 팠는데 유징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금오도의 수려한 경관을 바라볼 틈도 없이 연목마을 해안가로 내려섰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해안가를 엄습한다. 일행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선발대가 돌밑을 팠다. 서너차례의 삽질 끝에 검은 기름덩어리가 묻어 난다. 시커먼 기름 찌꺼기로 악취가 코를 찌른다. 손으로 만져보니 미끈하다.

연목마을에서는 호미나 삽정도로만 파도 쉽게 기름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1km 떨어진 대유마을 해변가에서는 굴삭기로 파면 기름덩어리가 그대로 발견된다고 한다.

한무리의 낯선 사람들이 해안을 가득메웠는데도 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물이 들어 찬 바닷가 쪽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해산물 채취에 열중이다.
“이 짓거리라도 안하믄 뭘 먹고 살꺼요. 예전에는 이 바닥에서 먹고 살았는디”라며 말끝을 흐린다.

“초기 작업에서는 상당량 방제가 이뤄졌고 이후 독성이 강한 난분해성 요소들이 뭉쳐 형성된 것들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로 이는 20년이상 갈 수도 있다. 다만 지금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찾아내서 처리해야 한다”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았을 터다. 다만 10년후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 끝나지 않은 환경과의 전쟁

그렇다. 결론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아직도 뱃전에서는 사전 예방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고, 사고해역에서는 기름이 떠오르고 있다.

어민들의 생계 터전이었고 지금도 그럴 수 밖에 없는 해안가에서 기름덩어리가 쉽사리 발견되고 있다. 적조발생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고, 환경영향조사만 이뤄졌을 뿐 인체에 미쳤을 영향에 대한 연구조사는 시도도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혼란스럽게 헝클어진 가운데 돌아오는 뱃길에서는 또다시 설전이 벌어진다. “회사는 약한 기준으로 판단하니까 소량이 남은 것이고, 환경단체는 높은 기준으로 판단하니까 많은양이 남은 것이다”

예방을 위한 노력이나 새로운 연구조사활동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들리지 않는다. 여태껏 안개는 시야를 흐리고 있다.

파도속에 휩쓸려 갔을 법도 하건만 수많은 지역민들을 안타까움과 울분에 치떨었던 기억은 또다시 새록새록 돋아나 항구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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