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사회적 아노미(anomie)를 경계한다
공동체의 사회적 아노미(anomie)를 경계한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7.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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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이영일 <논설위원,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
   
요즘들어 우리 사회 각계에서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에만 집착하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자각하여 그것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모라토리엄 인간(Moratorium Man)이라는 용어도 있다. 이는 사회적 자아(identity)를 확립하고 사회적 책무가 따르는 성인이 되기를 유예(Moratorium)하는 사람을 이름이다. 더불어 사회적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신념과 행동규범이 약화되거나 사라져버리는 무규범 상태인 사회적 아노미(anomie)도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라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모라토리엄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그러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치려는 매우 안타까운 사회적 아노미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작금 보성 골프장 투자 건설과 관련하여 상공인 회장에게 사퇴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현실이 그러하다. 이는 그가 평범한 상공인이 아닌 여수 상공인의 대표격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역공동체 전체가 경제 활성화에 총 매진하고 있는 시기에 터져 나온 사안이어서이다. 오죽하면 시와 시의회조차 속 앓이만 하면서 타 지역 투자가 아쉽고 안타깝다고만 말할까? 말하자면 기업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공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이것은 상공인 회장의 사회적 아노미에 다름 아니다.

또한 지역의 환경단체 대표들이 각기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여수산단측으로부터 사업비 일부를 지원받은 사실로도 말들이 많다. 물론 환경단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을 다들 알고는 있다. 그들의 도덕성에 비추어 지원받은 자금이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환경문제와 더불어 여수산단과 지역사회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방이 오가는 시기여서 문제인 것 같다. 이렇게 되면 환경단체의 '감시 기능 소홀'과 '정체성 혼란' 등에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자와는 달리 후자의 경우에는 평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존경받는 종교계 인사가 포함되어 있어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단체 대표가 갖는 높은 도덕적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 했다. 남에게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각박하기만 한 우리 사회에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사회의 큰 행복이다. 그러기에 더욱 안타깝고 우울한 것이다.

문득 1960년대 소설 최인훈의 ‘광장’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최초로 남북의 분단구조를 이념적으로 접근하여,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려 제3국을 택했던 이명준이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경계인(境界人 : marginal man)이 생각난다.

더불어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도 생각난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그 누구도 경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함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아노미를 경계하는 사람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또한 사람의 나고 물러섬이 분명한 것도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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