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에너자이저가 된다
오늘도 나는 에너자이저가 된다
  • 최진희 시민기자
  • 승인 2005.07.12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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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의 한국어 교육
세계적인 문화유산 '앙코르 왓'이 있는 시엠립, 현재 시엠립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고 그 중 한국인 관광객이 단연 1위다. 이런 곳에서 한국어 교육을 처음 시작한 나는 그야말로 영광이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이 나라 수도인 프놈펜에서 몇몇 선배 단원들의 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다. 대부분 소수의 인원들이 조용하게 수업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나라 학생들은 다들 소극적이고 항상 엄숙하게 수업을 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막상 시엠립에 한국어 과정이 개설되고 수업을 하면서 '이 나라 젊은이들도 이렇구나!' 나의 편견이 무색해졌다. 우선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데 놀랐고 그 중 60명이 수업을 듣게 됐는데 매 수업 시간마다 놀라움은 계속 됐다.

먼저 너무 적극적인 수업 태도가 가르치는 사람을 신명나게 만든다. 서로 발표하려고 손을 드는 학생들, 내가 질문할 것 같은 눈치가 보이면 미리서 손을 들고 있는 학생도 있다. 처음에는 내게 질문이 있는 줄 알고 말해 보라고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선생님이 이제 질문을 할거라서 자기가 대답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물론 적극적인 만큼 성적도 매우 좋은 편이다. 각 반마다 2시간씩 수업을 하는데 사실 2시간도 짧을 때가 많다. 그래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딱 5분만 준다. 그러면 그 쉬는 시간 중에 서로 질문을 하려고 노트를 들고 몰려드는 학생들, 그 학생들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한국어에 굶주려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런 학생들과 생활하다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우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날씨에 관한 대화를 배울 때다. 책에 해님이 방긋 웃는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어떤 날씬지 옆에 한글로 적는 거다. 해님이 방긋 웃고 있으니 당연히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가 답이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오늘은 날씨가 매우 나빠요.'라고 쓰는 거였다. 그래서 왜 날씨가 나쁘냐고 했더니 이렇게 해가 크게 떠 있는데 얼마나 덥겠냐고, 그래서 날씨가 나쁘다는 거였다.

더운 나라 사람들이라 더위에 그만큼 예민한 듯 했다. 위치에 대한 대화를 배울 때, 또 한 번 당황을 했다. '빌딩 옆에는 집이 있어요'가 답인데 많은 학생들이 '빌딩 옆에는 회사가 있어요.'라고 쓴 거다.

우리나라 사람 누가 봐도 단층 주택 그림인데 이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게 집일 수 없는 거다. 집은 대부분이 나무집이고 외진 곳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빌딩 옆에 버젓이 그것도 시멘트로 지어진 건물은 집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거다.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열정이 강한 만큼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나는 처음에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인 관광객들 대부분이 어르신들 단체관광으로 오는 분들이라 예절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업, 나이, 이름 등을 묻는 시간에 항상 상대방에게 질문을 할 때는 나를 먼저 밝혀라. 예를 들어서 '저는 빌 브라이트 대학생인데, 실례지만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라는 식으로 교육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한국인 친구들이 내 수업을 참관하게 됐다. 학생들은 선생님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한국어로 얘기할 수 있다는데 매우 기뻐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인데... 실례지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국사람들이 자기들이 질문을 하기도 전에 미리미리 답변을 해 버리는 거였다. '제 이름은 쓰레이 수어입니다.' 그리고 나서 '실례지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가 아직 남았는데 한국인들은 미리서 '아, 네... 제 이름은 조지훈입니다.'답변을 하는 거다. '저는 학생입니다. 실...' '네, 저는 직장인입니다.' 학생들이 다들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다들 마음이 급해서,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대답을 하는 거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학생들은 다시 하겠다고 처음부터 다시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거였다. 이번에는 한국인 친구들이 끝까지 기다렸다가 성심껏 답을 해 주자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생겼다. 내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이 우리 학생들의 질문을 끝까지 기다려주지 않을텐데, 그렇다면 교육 방법을 바꿔야 하나? 그런데 한국사람들의 대화법은 개인별로도 천차만별이라 어떻게 맞춰서 가르치기가 힘들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보편적이고 공손한 대화법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한국에서 어린이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정말 티 없이 맑고 순수하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이 자꾸 나를 감동시킨다. 최근 한국인 관광객들이나 가이드들의 문제점들이 지적됐을 때 한 학생이 말하는 거다.

'이 나라에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을 흐린다는 속담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똑같은 속담이 있다고 했더니 '그러니까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하는 거다. 자기들은 다 알고 있다고, 한국 사람들은 다들 좋은데 그 중에 몇 몇 안 좋은 사람들이 물을 흐리는 거지, 한국 사람이 다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한다는 거다.

자기들은 한국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니까 선생님 걱정하거나 그러지 말라고 위로하는데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캄보디아, 적어도 시엠립의 젊은이들은 이 정도의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 언론에 귀를 기울이지만 나름대로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안다.

나는 이 학생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내가 주는 것 이상으로 돌려줄 줄 아는 학생들, 나는 지금 캄보디아 이 땅에서 너무 큰사랑을 받고 있다. 오늘도 그 사랑으로 에너지를 가득 충전해서 학생들 앞에 선다.

   

 

최진희 시민기자는 여수출신으로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크라운제과 삼성전기 홍보실에서 근무했다. 또 광주kbs 방송작가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캄보디아 시엠립 빌브라이트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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