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길의 땅이야기] 삼일<7> 호명동
[박종길의 땅이야기] 삼일<7> 호명동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7.0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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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동(虎鳴洞)은 범우리라고 하던 우리말을 훈차(訓借)한 마을 이름으로 ‘범이 울던 곳’이나 ‘범 골짜기’의 뜻을 가지고 있는 땅이름이다.

여수지역 율촌과 소라면 에서도 같은 이름의 골짜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서 예전에는 여수반도에도 호랑이도 많이 살았던 모양이다.

호명동의 마을은 호명과 호복마을을 비롯해 양지마을, 오천마을, 내동마을이 호랑산의 북쪽인 계곡 아래쪽으로 자리하고 있고 위쪽엔 자내리로 대동과 양지, 석정, 사근치 마을이 있다.

호명마을에는 지방기념물 165호로 지정된 방재수림대라고 하는, 100년에서 400년 된 느티나무, 팽나무 등의 대형수목 80여주가 전해져 온다. 이 나무들은 호랑이 형국이라는 호명의 풍수에서 꼬리가 없어 이를 비보하기 위해 마을하천을 따라 심었던 나무라고 한다.

방재수림대가 시작되는 마을 입구의 하천가에는 길이 4.3 미터 폭 1.2미터의 큰 바위하나가? 눈에 띄는데 많은 사람이 함께해야 설치 가능한 이런 큰 돌다리에서 이 마을 선조들의 협동심을 엿볼 수 있다. 마을에 남아있는 들돌과 오랫동안 풍속으로 전해왔던 진세행사에서도 전통 있는 마을의 분위기가 전해온다.

여수지역의 오래된 마을이면 빠짐없이 분포된 고인돌이 호명마을에도 안골입구, 가좌지 고개, 호명마을 앞 논 기슭에 산재해 있는데 이 중 호명마을 앞 고인돌 중 ‘산태바구’에는 흥미로운 사건과 이야기가 전해온다.

산태바구는 오랫동안 비스듬한 넓은 바위 위에서 어린이들이 미끄럼을 타고 놀았기 때문에 명명된 이름으로 바위위에는 반질반질 흔적이 남아있다.

100여 년 전 마을 부잣집에서 새 집을 지을 때 바위를 주춧돌로 사용하기 위해 바위를 깨자 바위가 두 동강 나는 순간 집주인이 화를 입었단다.

‘호복골’은 범우리 호명의 지형을 풍수지리의 호랑이 복부에 해당되는 곳이란 뜻으로 ‘호복골’이라고 하였는데 마을의 노인들은 ‘호박골’이라고 많이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 호랑이와 연결지어 한자말로 표기하면서 호복골(號腹谷)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내동(內洞)은 ‘안골’을 훈차한 이름이며 양지마을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호명마을 동쪽 고갯마루에 있는 오천마을은 본래는 ‘머구골’이라고 부르던 곳이었는데 산 넘어 오천마을에 살던 주민들이 마을에 수원지가 만들어지면서 이주를 강요당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특히 마을을 이주할 시절에 여순사건이 터지면서 마을에 좌익계 청년이 있다는 이유에 주민 모두가 혹독한 홍역을 치렀던 터라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삶터를 빼앗긴 애환이 있는 마을이다. 전에 살던 마을 이름을 따라 우리말로 ‘오마니’라고 하였고 한자로는 오천으로 불리게 되었다.

자내리(自內里)는 산의 옛말인 안에 있다는 뜻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땅이름으로 산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큰 마을 대동과 볕이 잘 드는 마을 양지마을이 있으며 흥국사로 넘어가는 ‘절께재’의 한자 표현인 사근치(寺近峙) 와 돌들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 돌쨍이 돌정자라는 이름들이 전해져 온다. 얼마지 않아 국도 17호선 우회도로가 만성리에서 이 마을을 지나가게 계획되어있어 산이 깊어 자내리로 불렸던 마을에 많은 변화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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