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길을 떠나다
나무, 길을 떠나다
  • 신병은 시민기자
  • 승인 2005.06.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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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신병은<시인>
   
▲ 사진 김자윤

산그늘 깊어진 6월의 아침
젖은 산 언저리에 식물성 그리움이 홀씨로 날아 와 씨눈을 틔운다.
가랑비가 나무와 풀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는 풍경을 보면서 마음 촉촉하게 젖어든다.

출근길 큰 나무 아래 비 한 방울 맞지 못한 채 한숨을 풀어두고 있는 작은 풀을 보면서 한 곳에 머물러있는 삶의 아픔을 본다.
뿌리내려 산다는 것은 머물러 사는 아픔일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늘 아침은 산으로 들로 마음을 풀어놓고 싶다.

무성한 바람으로 날아드는 저 가랑비의 조용한 생명미감, 앞서 온 가랑비를 안고 길 위 낮은 포복으로 피어나는 안개, 나무가 나무를 건너고 풀이 풀을 건너는 사이 사이로 잠시 바람이 보였을까,

빗방울 어깨에 두르고 즐거운 언어로 산을 거슬러 오르는 나무들 나무들.
그리움의 무게 아래로 두고 젖은 길을 나서면 나도 처음의 모습을 헹궈낼 수 있을까.

귀 기울이면 낯선 탄생의 울음소리 들린다.
아래에는 늘 시간을 덮어주던 흙이며 낙엽이 쌓여있고 ..... 스쳐 지나는 생각도 거기 뿌리를 내리고 ... 어제 떠난 눈물 흔적 몇몇 .... 오랫동안 자라지 못한 꿈, 부엽으로 감춰진 상처 ...... 를 감싸주고 받아주며 늘 서로의 뒤쪽에만 서 있는 나무들의 가지에 작은 빗방울 몇몇이 매달려 눈빛 영롱한 길을 내고 있다.

작은 빗방울도 빛이 난다
나무들의 이마에도 바람소리 지난 자국들이 선명하다
습기 찬 마음 여기저기에서 보..고..싶..다..보..고..싶..다..고 그리움이 삐죽삐죽 싹을 내고 있다
손길 닿지 못한 삶의 둘레를 또르르 또르르 빗방울이 튕겨닿는다

그대 만나 속까지 젖어 돌아오는 날이었다.
아직 비가 내린다
마음과 몸을 마음껏 풀어내는 저 빗방울을 보고 있으면? 나도 풀이되고 나무가 되어 푸르게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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