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통합은 지역의 백년대계
대학 통합은 지역의 백년대계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5.3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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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김경호 <논설실장,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국립대학이 통폐합과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육부는 2007년까지 현재 50개의 국립대학을 35개로 줄이겠다는 목표로 권역별 국립대학의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구조개혁을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우선 8백억을 구조조정 사업 지원액으로 책정하여 ‘대학 대 대학’ 통폐합과 학내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대학에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3천억을 다년간에 걸쳐 구조조정 사업에 투자하겠다며 대학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신임교원의 배정에 있어서도 구조조정 성적이 우수한 대학에 우선권을 배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개혁의 성과를 국립대학의 예산과 연계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누리사업(NURI), BK21, 법학전문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 도입 등과도 연계시켜, 실적이 부실한 대학에는 불이익을 주겠다고 교육부는 벼르고 있다.

사실, 국립대학 재정이 거의 대부분의 국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국립대학으로서는 교육부의 구조조정 요구에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처지이다. 하여 지방 국립대학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권역별 통폐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간의 통합이 쉬운 과제가 아니라는 것이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충북대와 충남대간의 통합이 충북대 구성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전북대-군산대-익산대, 경상대와 창원대, 강원대와 삼척대 사이의 통합 논의도 답보상태이거나 거의 물 건너간 상태이다.

이처럼 대학 통폐합 추진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관성 없는 교육부의 정책에 대한 불신과 통폐합으로 인한 신분의 불안, 통합 흡수에 따른 위상변화에 대한 거부감, 거주지 이전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하겠다.

그나마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부산대와 밀양대의 통합이다. 통합 명칭으로 ‘부산대’로 하고, 통합 대학의 총장을 기존의 부산대 총장이 맡는 등 부산대가 밀양대를 거의 일방적으로 흡수 통합한 경우이지만, 내년 3월 새롭게 출발할 준비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이다. 하지만 통합 과정에서도 학교의 위상 추락을 이유로 부산대 교수들이 통합을 반대하는 등 진통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지역의 유일한 국립 종합 대학인 여수대학은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 그 선택이 지역 인재들의 고등교육을 책임지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만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수대학은 애초 순천대학과의 통합을 바탕으로 범 광양만권을 거점대학으로 비상하는 것을 추진해 왔다. 그러다 최근 교수회가 전남대와의 통합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순천대와의 통합 논의는 폐기처분되기에 이르렀다.

‘전남대 여수캠퍼스’, 이름은 그럴싸할지 모르겠으나 통합이 이루어지면 여수대학은 자연스럽게 해양수산 관련 학과를 위주로 축소 재편될 것이고, 자칫 전남대의 외연 확장에 머물러 독립된 캠퍼스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여수대학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해양수산 특성화 대학의 이미지가 상쇄되는 것은 물론이고, 종합대학으로서 지역사회로부터 요구받고 있는 인문 사회분야의 깊이 있는 교육은 그저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여수대학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기 이전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염려마저 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수대학 통합 추진 행보에 대한 지역 여론도 호의적일 리 만무하다. 여수대학과 지역 고등교육의 미래를 결정할 중차대한 사안을 시한에 쫓겨 중심을 잡지도 못한 채 오락가락 한다고 여론은 질타하고 있다.

통합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것저것 따지며, 딴죽 건 것 같아 미안한 감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남대에 흡수 통합되는 것이 과연 여수대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안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그 선택은 여수대의 몫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지역사회 전체의 몫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선택에 앞서 합리적이고 공개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사회도 그 결정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외형적인 구조조정에 치우친 교육부의 일방적인 정책이 교육 현장의 염려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외형적인 구조조정이 곧 대학의 내실화와 경쟁력의 향상으로 연결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강압적으로 통폐합을 요구하는 것보다 지역의 국립대학에 더욱 많은 정책적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지역 대학은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인식을 토대로, 쉼 없는 연구와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대학의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조조정은 백년대계(百年大計) 이어야 한다. 교육부와 대학 당국은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몸집을 줄이겠다는 정책이 자칫 애써 키워온 대학의 키를 낮추는 꼴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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