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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삼일2-화치
[박종길의 땅이야기] 삼일2-화치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5.3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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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지역의 북서쪽에 자리한 화치동(花峙洞)은 한자의 뜻으로 옮기면 ‘꽃 고개’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꽃 고개는 아름다운 꽃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화치의 옛 이름은 ‘꼬(고)재’라고 하였다. ‘꼬(고)재’는 강이나 바닷가에 튀어나온 지형에 붙게 되는 ’곶이‘라는 말이 변형된 말로 된 발음으로 하면 ‘꼬지’나 ‘꼬재, ‘고재'가 된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꼬(고)는꽃 화(花)로 재는 훈차(訓借)하여 치(峙)로 표기하니 화치가 된 것이다.

소라면의 성본마을도 옛 이름이 ‘고재’였는데 화치라 하였으며 여러 마을에 산재한 ‘꽃밭 등’이나 ’꽃 재‘는 땅의 모양이 꼬치모양으로 길게 튀어나온 형상이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으로 진달래가 많이 피어서 생겨난 이름이란 유래는 잘못된 설명들이다.

화정면에 있는 웃 꽃섬 상화도와 아래 꽃섬 하화도의 이름도 꽃이 많이 피어서 생겨난 이름이 아닌 길게 생긴 섬의 모양 때문에 생겨난 이름인 것이다.
화치동엔 많은 마을들이 있다가 공단의 확장으로 하나씩 둘씩 사라져 지금은 망향의 비만 남아 옛 마을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다.

웃몰, 상촌, 원화치 마을로도 불렸던 화치 마을은 호구총수에서는 고치(古峙)로 기록되고 있다. 1997년 통계기록에 232호의 가구가 있었던 큰 마을로 신안 주씨 문중에서 건립한 화산사란 유교사당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이름난 서당이 있어 뛰어난 한학자를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한재들, 닭뫼, 우복산, 당산나무등, 먹뎅이골 등의 지명이 전해왔다.
덕암(德岩) 마을은, 지역의 가운데에 마을이 있어 ‘중말’이라 부르다가 많은 전설을 간직한 마을 수호신 격인 ‘벙바구’라는 바위를 신성하게 모시면 덕을 받는다 해서 마을 이름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벙바구와 함께 엉굴, 산소등, 절터골 등의 지명이 있었다.

대나무가 많아 ‘대밭골’이나 ‘대갓뜸’으로 불렸던 죽안마을은 ‘대갓뜸’을 훈차하여 죽안(竹岸)마을이라 하였다. 거북바위와 가물바위, 갓녁, 도리미산, 양달과 음달, 통새미, 질매등 같은 지명이 전한다.

연성마을은 ‘수문통’,‘작은 아구지’, ‘갈무개’ 등의 지역이 있었으며 연꽃이 많이 자생하여서 지었다고 한다.

첨산(尖山)마을은 마을 뒤에 솟은 ‘뽈록산’이라고 불렀던 뾰쪽한 산 때문에 지어진 이름으로 목포 유달산의 노적봉과 같이 임진왜란 때 이 산에 볏짚으로 엮은 이엉을 덮고 쌀뜨물을 바다로 흘려보내 군량미를 쌓아둔 노적가리로 왜적을 속여 사기를 꺾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왔다. 첨산과 함께 새덜바구, 공솔곶, 복숭머리, 방조제, 제발 등의 땅이름만으로도 해안가의 지형이 그려진다.

중방마을은 마을이 제방 가운데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었고 환재마을은 환곡창고가 있어 환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전하는데 주변에선 ‘한재골’로 더 많이 불렸다. 용혈마을은 용구미라고도 불렸던 마을로 마을에 용이 승천하였다고 전해지던 ‘용샘’이 있어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으로 방죽, 자재골, 갯등, 한재골, 큰골, 땅골, 죽다렝이 등의 이름들이 있었지만 마을이 사라지고 지형이 바뀌어버린 지금은 땅이름이 전하는 의미에 상상으로 만 그려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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