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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삼일1
[박종길의 땅이야기] 삼일1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5.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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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선 삼일지역은 진례산과 영취산 같은 높은 산을 뒤로하고 해산물이 풍부한 광양만을 끼고 있는 뛰어난 자연환경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이 정착하였던 흔적을 유물유적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산업단지로 조성되면서 조사된 이 지역의 고인돌에서는 큰 권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비파형청동검을 비롯해서, 소옥, 관옥, 곡옥 등 다양한 형태의 옥으로 된 장신구와 석검, 석창, 화살촉, 민무늬토기 등의 생활도구와 함께 특히 볍씨자국이 있는 토기 등이 발굴되어 일찍부터 이 지역에서 쌀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한반도 남해안 청동기문화의 중심 지역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기록된 역사에서도 삼일지역은 고려시대에 삼일포향과 적량부곡, 진례부곡이 설치되어 있어 국가의 중요한 지역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삼일이란 지명은 삼일포향(三日浦鄕)이란 이름으로 고려시대의 이 지역에 있었던 향소부곡(鄕所部曲)의 하나인 행정지역명으로 처음 등장한다.

민간에 전해오던 삼일이란 이름의 유래는, 고려 말의 충신으로 진례에 귀양 왔던 공은선생이 돌아가시자 기러기가 삼일동안 울다가 죽어서 이 지역을 삼일이라 하였고 기러기가 떨어져 죽은 곳을 낙포라 하였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왔다.

공은 선생은 고려 말에 평장사라는 벼슬을 지냈던 사람으로 조선의 건국으로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거절하고 진례에 귀양와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켰던, 자는 백량(伯良), 호는 고산(孤山)으로 알려진 고려의 충신이다.

그러나 진례부곡과 함께 삼일포향이란 지명이 공은선생 이전 시대부터 전하고 있어 이 전설은 공은선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어진 이야기로 보인다.
삼일과 같은 이름으로, 금강산 동쪽의 바다 해금강에 있는 삼일포에도 흥미로운 지명 유래가 전해져 온다.

신라시대 영랑이라는 화랑이 친구들과 함께 금강산의 삼일포에 들렸다가 경치에 취하여 사흘을 머물다 간 뒤에 삼일포란 이름을 지었다고도 하며, 다른 전설로는 옛날 어떤 왕이 관동팔경을 구경을 가서 하루씩 머물기로 하였으나 삼일포의 경치에 빠져서 사흘을 머물게 되어 삼일포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삼일이란 지명의 유래는 삼일지역 출신으로 국립지리원에도 근무하셨던 성남해 선생님의 견해가 많이 알려져 있다. 요약하여 소개하면 삼(三)은 우리의 옛말로 ‘미르’나 ‘무르’ ‘밀’로 일(日)은 고어로 마을의 뜻인 ‘실’에 해당되니 ‘미르실’로 풀이 할 수 있는 삼일은 용의마을이나 바닷가 마을로 해석 된다는 설명이다. 삼일의 지리적 특성과도 일치하는 설명이다.

여수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선 삼일의 북서부 지역은 대부분의 마을이 산단으로 조성되어 사라졌다. 삼일지역의 땅이름 이야기는 이들 사라진 마을들의 이름을 되새기면서 이 지역에 어떤 마을이 있었던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산단의 작은 도로 이름으로나마 남겨진 마을이름의 유래와 그 곳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으로는 어떤 일이 있었던지 삼일지역 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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