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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쌍봉5
[박종길의 땅이야기] 쌍봉5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5.0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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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동, 봉계동, 주삼동
여천동은 내동, 월평, 석창마을을 합한 법정리의 이름으로 처음 사용되다 동이 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서 여수반도의 중심마을이었던 현 석창성지는 한때는 여수현의 치소(治所)로 사용되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기록에서는 이 일대를 여수면(麗水, 呂水面) 이라 하여 구항이 있던 좌수영과 구별하여 불렸던 것을 알 수 있다.

내동마을은 비봉산 남서쪽에 자리한 마을로 골짜기 안에 마을이 들어서서 ‘안골’이라 한 것을 한자로 내동이라 하였다. 마을 안쪽으로 작은 들이 있는데 예전에는 절이 있어서 부처님을 모셨기 때문에, 부처가 있던 들이라 뜻인 ‘부처들’이 변해 ‘부채들’이란 이름으로 전해져 온다.

마을 이름이 된 안골에선 1960년대 밭을 일구는 중에 우연히 범종이 발굴되었다. 종에는 장생사(長生寺)라는 절이름과 명문이 발견되어 고려초기인 108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현존하는 전남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으로 밝혀졌다. 이 종은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월평마을은 ‘역몰’ 또는 ‘역밭’이라 부르던 마을 이름을 고쳐서 달밭의 의미인 ‘월평’으로 부르게 되었다. 역몰이나 역밭으로 불렀던 것은 석창성이 있던 시절에는 성의 역졸들이 이 마을에 주로 살아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가 신분제가 사라진 뒤에 역몰이란 이름이 좋지 않아 이웃 월산마을 앞들에 있는 마을의 뜻으로 ‘월평’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석창마을은 옛 석창성터에 있는 마을이다. 석창성은 조선시대에 축성되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여수목책도니성(麗水木柵塗泥城)이라 하여 이 곳 성터가 나무로 목책을 하고 진흙으로 담을 쌓았던 기록을 엿볼 수가 있어 석성이 쌓아진 것은 그 이후로 짐작될 뿐이다. 석창성지는 최근 발굴이 되어 유적지로 복원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 중이다.

봉계(鳳溪)동은 봉강과 계원마을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으로 동 안에는 월앙, 봉강, 계원, 대곡마을이 있다.

월앙마을은 전봉산 산자락이 흘러내린 목 부근에 마을이 있어 ‘달목’ 또는 ‘다리목’이라 한 옛 마을 이름을, 달과 목으로 하여 월항(月項) 이라 하였던 것을 다시 월앙(月仰)으로 그 음을 고치면서 달을 우러러 본다는 뜻으로 변하고 말았다.

봉강마을은 ‘목골’이라 불렸던 곳으로 처음에는 월앙마을에 포함되어 있다 마을이 커지면서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마을의 지형을 풍수지리로 해석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계원마을은 마을이 냇가 주변에 형성되어 있어서 ‘냇가돔’이라는 마을이름을 한자말로 바꾸어 계원(溪源)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인 당목산에는 백제시대로 알려진 토성이 있으며 토기와 기와편 등의 옛 유물들이 많이 발견된다.

월산마을은 당목산의 윗 산에서 유래된 마을 이름으로 ‘달산’이나 ‘달뫼’의 이름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달은 고어에서 큰 산이나 언덕을 표현한 말로 밤하늘의 달과는 다른 뜻이다. 대곡(大谷)마을은 큰 골짜기의 뜻인 ‘큰골’을 한자로 고친 마을 이름이다.

주삼동(珠三洞)은 주암과 삼동마을에서 유래된 마을 이름으로 주암(珠巖)은 마을이 처음 생겼을 때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구슬바위 전설에서 유래된 마을 이름이며 삼동마을은 마을에 건너몰, 서재골, 구정몰 등의 세 곳의 작은 마을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해산동(蟹山洞)에는 해지(蟹旨), 오산(烏山), 대평(大坪), 기동(基洞), 고막(古莫)마을이 있어 해지와 오산마을에서 해산이란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

해지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바다에 사는 게 모양의 형상이라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많은 주민들이 게머리재와 같이 마을의 지형과 게의 형상을 일치시킨 다음 풍수지리를 곁들인 마을 유래를 전해주었다.

오산은 올미라고 하는 우리말 땅이름을 오산(烏山)이라는 한자이름으로 바꾸어 놓은 이름으로 ‘올미’의 뜻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대평마을은 게머리나 게몰로 불렀던 지역으로 마을 앞 들이 넓어 큰들이란 뜻으로 대평(大坪)이란 마을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기동(基洞)은 ‘텃골’이란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마을 이름이다. 고막마을은 해산물인 고막이 많이 잡혀서 ‘고막등’이라고 불렀던 곳에 마을이 들어서자 한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고막등을 고막(古莫)이란 마을이름으로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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