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길의 땅이야기] 쌍봉4
지난 회에선, 지형의 특성이 고음내 → 고음천 → 웅천이란 이름으로 변화되었던 곰칭이 웅천동의 유래를 살펴보았다. 최근 택지개발로 지도가 변하고 있는 웅천동의 작은 마을의 유래도 알아보자.
웅서마을은 웅천의 서쪽에 있다하여 한 때는 서촌이라 하다 지금은 웅서마을로 부른다. 마을에 충절공 정철, 충의공 정춘, 충숙공 정린, 충정공 정대수 등 임란사충신과 이순신 장군을 배향한 오충사가 선원동의 가곡에서 옮겨 세워져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던 충신들의 뜻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웅남마을은 웅천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가장 늦게 마을이 들어서 ‘새터’라고도 하며 잔디가 많은 지역을 ‘짠드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웅남마을 앞 바다에는 ‘두력도’라고 하는 작은 섬이 있는데 두력도는 ‘두레기’라는 우리말을 한자말로 음을 빌려 적은 땅이름이다. 두력도 서쪽에 있는 장도(長島)는 섬이 길게 생겨서 ‘진섬’이라고 한 것을 장도란 이름으로 훈차하였다.
진섬 남쪽의 섬 가덕도는 ‘더덕섬’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더할 가(加)자를 써서 가덕도라고 하였는데 한자말로 땅이름이 변하는 데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변하여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흥미로움이 있다.
웅천의 동쪽 웅동마을은 중촌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골짜기에 개천이 흘러서 무룡골 또는 수룡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작은 개천들이 용트림을 하는 모양으로 구불구불하게 생겨서 용줄이나 용천 무룡골 수룡골 등의 이름을 주어 그 의미를 신성시 하였다.
모전마을은 ‘띠밭몰’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고친 마을이름으로 ‘띠’란 방석이나 돗자리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던 긴 풀이다. 띠밭과 마을 이란 뜻의 ‘몰’이 합쳐진 ‘띠밭몰’은 이 마을 부근에 띠가 많이 자생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웅천동의 동남쪽에 위치한 송현마을은 ‘솔 고개’라고 하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친 이름이다. 솔고개는 마을 입구 고개에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전설에는 충무공이 어머님을 안전하게 피신시킬 곳을 역술인에게 물어보니 소나무 그늘아래가 안전하다 하여 가까운 좌수영에 모시질 않고 ‘솔 고개’로 불리는 이 마을로 어머님 변씨 부인을 충청도 아산에서 모셔와 전쟁 중에도 틈만 나면 문안을 여쭈었다 한다.
충무공의 어머니 변씨 부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부터 1597년까지 5년 동안 이곳에서 난을 피하셨는데 공의 난중일기에는 80일이나 어머님에 관한 일기가 전해져온다.
내용을 살피면 용맹스런 장군으로서 뿐만 아니라 지극한 효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사람됨을 알려주는 당시의 상황과 심정들이 잘 묘사되어서 후세에 전해지고 있어 윤리와 도덕이 해이해진 현대인들에게 효의 표상을 전해주고 있다.
화장동은 화산과 군장이란 마을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취하여 만들어진 동명으로 1914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 지역에 관한 기록으로는 조선시대인 1789년의 호구총수에 대통마을만이 기록에 전하고 있었는데 최근 택지조성으로 실시하였던 1, 2차에 걸친 문화유적 발굴조사에서 이 지역은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선사시대주거지와 고인돌을 비롯하여, 원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시대의 주거지와 민묘 등 다양한 형태의 옛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되어서 발굴 자료를 토대로 지금은 선사유적공원이 건립되었다.
화산 마을의 옛 이름은 ‘덕골’이었다. ‘덕골’이란 이름은 이 일대의 지형이 언덕모양의 구릉이 있어서인데 마을 이름을 한자화 하면서 덕을 세운다는 뜻으로 입덕(立德)이라하다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시에는 마을 주변으로 밭에서 키우는 벼를 많이 재배하여 벼 화(禾)와 뫼 산(山)자를 써서 화산이라는 마을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군장마을은 옛 이름이 궁장이라 전해져 오는데 무상원 시절 활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전설로는 노루 사냥을 하다 노루가 숨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온다. 이 곳 역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궁장이란 마을 이름을 음이 비슷하고 쓰기 쉬운 군장(軍長)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대통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대나무 통처럼 생겨서 지어진 이름이며 이를 소리 나는대로 표기하여 한자가 지니는 뜻과는 무관하다. 율촌의 취적 마을도 ‘대통골’이라는 이름을 피리를 분다는 뜻으로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 것을 소개 한 적이 있는데 이 마을에서는 소리 나는대로 기록하여 대통마을 이라 하였으니 대통과 취적은 같은 땅의 모양을 서로 다르게 표현한 마을 이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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