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가 폐지되면 남성들의 삶의 무게도 가벼워질 터
호주제가 폐지되면 남성들의 삶의 무게도 가벼워질 터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3.0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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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강정희 <편집위원, 성폭력상담소장>
남녀차별을 제도화한 호주제가 헌법재판소에서 시한부 사망선고를 받았다. 호주제가 혼인과 가정생활에서 양성 평등을 규정한 헌법 36조 1항을 위반했다고 판결한 헌재의 결정은 양성간의 진정한 공존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양성평등과 개인존엄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족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적절하고도 명쾌한 판결로서 마침내 성평등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국민의 기본생활을 규율하는 민법상의 대표적 성차별 조항인 호주제 폐지를 통해 가족 내에서도 민주주의적이고 수평적인 사고방식, 성평등 의식이 서서히 확산되리라는 기대와 함께, 가족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고통받는 가족이 사라진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호주제에서 규정하고 있는 아버지-아들-딸-처 등 남성 우선으로 이어지는 호주 승계조항과 부가(父家) 입적 조항, 부성(父姓) 강제조항 등이 남녀차별, 부부차별, 부모차별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호주에 관한 규정과 호주제도를 전제로 한 입적·복적·일가창립·분가 등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고 현행 호적을 ‘1인1적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도 지난달 말 현행 호적제도를 대신할 새로운 신분등록제도를 제출,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을 마련했다.

재혼가정, 편부모가정 등 새로운 가족형태는 이제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혼율을 강제로 낮출 수 없듯이 이런 가족들이 늘어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가족 형태의 변화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그에 맞춰 제도가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 재혼가정 아이들이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 사회생활에서 고통을 겪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우리사회의 오랜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의 모태라 할수 있는 중국의 경우 이미 오래전 자녀가 부모 양편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호주제를 폐지하였다.

사회주의혁명을 거친 중국이 개혁개방 이래 사유경제가 허용되자 조상의 무덤을 보수하고 제사를 부활하는 등 전통이 부활됐지만 자녀에게 성을 선택 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 독신여성이 아버지나 남자 형제에 귀속되지 않고 자신의 호구를 갖고 타인의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주부가 죽은 남편이나 시부모의 제사에 제주의 역할을 담당하고 남동생이 어리거나 남자 형제가 없으면 딸의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능력이 되는 대로 부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중국에서 전통적인 가족관계와 역할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형태가 성립됨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말해서 호주제 폐지가 전통을 붕괴하고 모계사회로 전환하는 등의 엄청난 변화가 아니라 개인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곰곰이 새겨볼만한 일이다.

호주제 폐지는 가족 안에서 개인이 선택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며, 호주제가 폐지되면 남성들의 부담을 줄여 남성 사망률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헌재의 마지막 변론에서 다음과 같은 생물학적 견해를 밝혀 결정타를 날렸다. “부계혈통주의는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계의 족보는 암컷만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호주제폐지와 대한민국 남성의 삶이 무관하지 않음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분석이었다.

또 “여성과 남성의 사망률은 번식 적령기인 20대와 30대에는 엄청난 차이(남성이 여성의 3배)를 보이다가 40대로 접어들면 비슷해지지만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40대와 50대로 들어서도 남성의 사망률이 치솟고 있다”며 이것이 부계혈통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 남성생명의 연장을 호주제 폐지와 같은 선상에서 의미있고도 재미있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오히려 호주제폐지로 만세를 불러야 할 사람들은 남성들이라는 것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남은 일은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 개정안의 국회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여성의원 수가 39명으로 늘어난 17대 국회에서는 호주제 폐지 등 여성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와 재개정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이 17대 총선에서 ‘호주제 폐지’를 공통 공약으로 제시한 것도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이 17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요인으로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머지 않아 3월 입학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재혼가족의 부모와 자녀들이 괴로워하고 있을까? 아름다운 봄 3월이 오기 전에 국회는 차별의 역사, 반민주의 역사인 호주제를 겨울 한파에 묻어버리길 기원해본다.

그 출발점 위에서 국회는 제도적 공백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을 서두르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그동안 실속없는 호주제의 희생양이 되었던 대한민국의 남성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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