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3도 수군통제영은 여수
첫 3도 수군통제영은 여수
  • 강성훈 기자
  • 승인 2005.03.0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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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과 관련된 여수문화유적
역사상 최초의 3도수군 통제영은 통영이 아니라 여수였다. 하지만 후에 통제영 본영으로 되었던 통영이 애초부터 3도수군통제영으로 인식되어오면서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수가 임진왜란 당시 역사상 최초의 3도수군통제영 본영이 있던 곳임에도 임진왜란 이후 여수에서 통영으로 이설된 ‘삼도수군통제영’산하 일개 ‘전라좌수영’이었던 곳으로 폄하되고 왜곡되어온 사실들은 학계에서도 여러차례 증명되었다.

여수지역의 문화유적들도 지역민들의 무관심 속에 잊혀져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여수지역에 산재한 문화유적들을 제대로 알고 이들이 갖는 역사성에 대해 재인식하는 것은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에 지역에 산재한 각종 임진왜란 관련 유적들을 재정리 해 본다.

■ 거북선 건조한 선소

선소는 판옥선, 병조선, 전투선, 맹선 등을 제작하고 수리한 조선소로 시전동 708번지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굴강 뒤로 가덕도와 장도가 천연의 방파제로 사용돼 "외해서 보면 육지요, 내해서 보면 바다"이면서 파도가 잔잔하여 호수와도 같은 천연의 요새로 평가받고 있다.

유적으로는 배를 정박시켰던 굴강을 비롯하여 무기 제작처로 추정되는 대장간(풀무간)-세검정-군기창고 등의 터가 남아 있고, 마을 입구에는 벅수가 세워져 있다. 병사들의 훈련장과 적의 동태를 감시할 수 있는 천연적인 요새인 망마산이 주변에 있다.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굴강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 충무공이 거북선과 판옥선을 건조했고 이 곳 앞바다에서 진수한 곳이기도 하다. 1980년 해군사관학교와 1985년 명지대학교에서 각각 발굴 조사한 결과 철촉등 565점의 유물이 출토(1차:113점,2차:452건)되어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중에 있다.

■ 이충무공 업적 담은 통제이공수군대첩비(보물 제571호)와 타루비

여수시 고소동에 소재한 고소대터의 정자형 비각안에 통제이공수군대첩비,타루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대첩비는 귀부, 비신, 이수의 3부작을 잘 갖춘 것으로 기단과 귀부가 1매의 돌로 되었다. 귀부에는 세장한 다리와 형식적인 머리, 그리고 등에는 육갑문이 표현되었다. 그 위에 장방형의 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얹었다,

비신 상단에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라 전액되었고, 비제는 "유명조선국정헌대부행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충청전라경상삼도수군통제사 증효충장의 유곡협도 선무공신광보국숭록 대부 의정부 좌의정 겸령 경연사덕풍부원군일 충무이공수군대첩비명병서"이다.

이수는 하면에 연화문이 장식되었고 전면은 중앙에 여의주를 중심으로 2마리의 용이 구름에 둘러 쌓인 채 다투는 형상이다. 후면은 구름무늬와 꽃무늬가 조식되었고 맨 위에는 꽃무늬가 보주가 있다.

이 비는 이충무공의 부하로 있다가 전라좌수사, 황해병사를 지낸 유연이 돌을 보내 김상용이 전을 쓰고 이항복이 비문을 지었으며, 비문은 김현성이 새겼다.
타루비는 1603년에 세워진 것으로 부하들이 장군의 덕을 추모하여 세운 것이다.

■ 첫 3도수군통제영 사용 - 진남관

국보 제304호 진남관은 조선시대 400년간에 걸쳐 조선수군의 본거지로 이용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때 전라좌수영의 본영 및 경상. 충청.전라 3도 수군 통제영으로 사용됐다.

종고산(해발 219M)을 배경으로 여수시 중앙에 위치한 진남관은 1598년(선조31) 12월에 통제사겸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이듬해인 1599년에 정유재란으로 인해 불탄 진해루터에 세운 것이다.

이 진남관은 객사로 사용되었고 남쪽을 진무한다는 의미에서 진남관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 건물은 정면 15칸, 측면 5칸의 대형 건물로 해인사 장경판고와 함께 몇 안되는 우리나라 대표적 건물중의 하나이다.

건물축조는 다듬돌 바른층 쌓기를 한 기단위에 자연초석을 놓고 그 위에 민흘림의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창방으로 연결되고 공포는 기둥위에만 배치한 주심포식이다. 기둥위에 주두가 놓이고 포 사이에는 화반을 받쳤는데 이러한 구성은 주심포나 익공계 집에서 주로 사용한다

■ 이충무공 도운 승군 본산 - 흥국사

보물 제396호 흥국사는 여수산단쪽에 위치한 영취산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흥국사 소속 승려들의 활동이다.

특히 승병장 표호별도장 삼혜는 기암대사와 함께 흥국사에서 승군 300여명을 양성하였는데 임진왜란때에 많은 활약을 하였고 정유재란때 기암대사는 이순신을 도와 싸우다가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에 선조는 자운보국선의대장"의 시호를 내리고, 백미 600석을 하사하여 위령제를 지내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순신은 자주 흥국사 공북루에 올라 대궐을 향해 '망궐례'를 행하였고 1593년에 친히 "봉황루"의 현판을 써서 걸었는데 1972년 보수공사중 이 현판이 발견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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