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 왜 필요한가?
과거청산, 왜 필요한가?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2.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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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이영일 <논설위원,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
   
지난 2004년 12월 기대했던(?) 17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에 의해 열린우리당 동료 국회의원에게 간첩 공세가 가해졌었다.

'간첩' 공격은 역설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은 물론 과거청산이 왜 필요한지, 과거청산이 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너무나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 어두운 독재시절, 밀실의 주역들이 버젓이 권력의 중심부에 살아남아, 여전히 애국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형국이 우리 눈앞에 현실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애국자가 친일파를 청산하기는 고사하고, 반대로 친일파가 애국자를 청산하고, 독재에 부역한 세력이 민주세력을 청산한 역사가 어떤 양상인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또한 지난 8월, 노무현 대통령이‘포괄적인 과거청산’의 의지를 밝힌 이후, 4개월 동안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거의 매일같이 과거청산을 반대하는 논리를 쏟아내 왔다. 그것은 1949년 반민특위를 무력화하는 과정에서 친일세력들이 들이댔던 논리와 너무나 유사해서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당시 이승만과 한민당은 반민특위와 과거청산 세력을 공격했는데,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요즈음의 '국론분열론' '경제우선론' '정략론' '진상규명 불가론' '과거청산 무용론' '학술작업 우선론' '부관참시론' 등과 거의 동일하다.

반민족, 반인륜, 반인권적인 행태를 저질러온 소인배들은 원래 권력과 부만을 탐하였으며, 일단 힘있는 쪽에 빌붙어, 잘못을 해도 반성할 줄 모르고, 궁지에 몰리면 무조건 변명으로 일관해 왔다.

그것뿐 아니라, 사실을 날조하고, 자신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세력이면, 그것이 비록 외세라 할지라도 그에 빌붙어서 동족을 괴롭히고, 양심세력의 얼굴에 먹칠을 해서라도 그들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는 일을 밥먹듯이 해 왔다.

예를 들면, 과거 일제하에서 충청도 최고의 갑부인 김갑순은 친일행각을 벌이다가, 해방 후 반민특위 위원들에게 체포되자, "보자, 오늘은 내가 잡혀서 쇠고랑을 차지만 내일은 내가 반드시 너희들에게 그 쇠고랑을 채울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결국 그가 예언했던 대로 반민특위 위원들은 감옥에 가고 그는 보란 듯이 석방되었다.

이후 발생한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반인권적, 반민주적 사건들은 거의가 이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었다. 그들은 1948년 제주에서, 여수에서 그리고 50년 6월 이후 전국에서 100만명이라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학살하였으며, 양심적 정치세력에게 테러와 협박을 서슴치 않았으며, 4.19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에게까지 발포를 하여 수 백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박정희 군사쿠데타는 바로 민주화가 되면 자신이 다시 쇠고랑을 차지 않을까 극도로 두려워했던 이들의 위기의식의 소산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박정희가 죽고 또 다시 민주화의 열기가 고조되자, 그들은 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무고한 젊은이들을 죽이고 새로운 정권을 만들어 냈다. '과거 콤플렉스'와 '민주화 공포감'에 사로잡힌 그들은 또 다시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이 친일반민족세력에 의해 역으로 제압 당하여 첫 단추를 잘못 꿴 역사가 가져온 결과는 이렇게 무서웠다.

이렇듯 서슬이 시퍼런 친일반공세력의 기세에 눌린 국민들은 이들이 쿠데타를 감행하고, 국가보안법을 날치기로 통과 개정시키고, 국회를 정지시키고, 민주인사를 불법 감금 투옥을 해도 겁에 질린 국민들은 "안보가 우선이다"라고 이들이 가르쳐 준대로 합창하면서, 독재의 서슬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 비켜가기를 기도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정치사회 모든 영역에서는 힘과 억지, 매수가 문제해결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과거청산, 왜 필요한가? 답은 매우 간단하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고 가해자의 오류를 밝혀서 정의의 감각을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와 안보를 들이대거나 온갖 수사를 나열하면서 과거청산을 좌절시키려는 자들의 음모와 숨은 동기를 바로 읽어내야 한다. 그들은 백성이 허무주의나 정치적 불신에 빠져 있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옥석이 구분되지 않고, 법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과거청산법을 비롯한 3대개혁입법이 다시 상정되려고 한다. 그러나 지난 12월 그것의 상정 자체를 육탄으로 저지하던 한나라당이 이제 어떤 논리와 힘을 구사해서 2월의 임시국회를 무력화 시키려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자. '과거'는 지금 우리 눈앞에서 현실이 되어 다시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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