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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화목장의 동쪽이란 뜻 … 청동기 시대 고인돌 군락지
곡화목장의 동쪽이란 뜻 … 청동기 시대 고인돌 군락지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12.2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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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야기] 화양면- 화동리
   
화동리(華東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촌, 통후동, 안양동, 대청동, 산전을 병합하여 화동리라 하다 1963년 대청, 안양, 산전이 행정리인 청량리로 분동 되었다.

화동리의 이름은 곡화목장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곡화의 화(華)와 동쪽의 동(東)을 합하여 지어진 마을 이름으로, 이 마을의 옛 이름은 동편, 댕핀, 코캐 등으로 전해지는데 댕핀은 동편의 방언이고 코캐는 곡화(曲華)가 변한 말이다.

곡화(曲華)는 조선조 초기부터 지금의 화양면 지역에 자리했던 곡화목장의 감목관이 거주했던 중심마을이었기에 목장의 이름이 마을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다.

조선후기의 호구총수(戶口總數-1789년)기록에는 화동의 이름은 없고 돌고개(乭古介)란 이름으로 나타나 있어 예전에는 돌고개가 마을이름으로 불렸던 모양이다.

돌고개는 화동리의 동쪽 고갯마루에 있는 고인돌 고개로 느티나무, 팽나무와 함께 큰 바위가 쉬어가기 좋게 놓여있어서 여름철에는 마을을 오가던 사람들에게 시원한 쉼터를 제공해 주던 곳이다.

이 바위들이 고인돌이라고 알려진 것은 불과 십수 년에 불과하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매장풍습으로 알려졌으며 오래 전부터 이 지방에 사람이 산 흔적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적 유산으로 화동 마을 일대는 농공단지 조성으로 파괴되기 전까지만 해도 수백기의 고인돌이 산재한 고인돌의 천국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화동마을 장년층에는 어린시절 고인돌 주변에서 발견되었던 돌화살촉이나 돌칼을 주워서 놀았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화동리 고인돌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조선조 곡화목장이 있던 시절에 감목관들의 치적을 기리는 글을 비석대신 고인돌의 표면에 새겨 넣었다는 점이다.

2기의 고인돌이 고갯마루에 남아있는데 빙옥같이 투명하게 다스렸다는 빙옥기정(氷玉其政)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어 고갯마루 뒤편에 세워진 화양고등학교 학생을 비롯한 뒷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다.

마을동구 고개에 이처럼 수십 기의 고인돌이 있었기에 돌고개란 이름이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름으로 시장이었던 저잣골, 건너 마을인 건너골, 말에서 내려 걸었던 하막(마)등, 나무통샘, 뒤의 마을 통후동 가죽을 다루던 사람이 살았다는 갓바치가 있고, 장터라는 곳은 화동리 동쪽 안골과의 사이에 있는 들로서 곡화목장 시절에 장이 섰던 터인데 곡화목에 유일하게 장이 섰던 곳이다.

보름마다 만조가 되면 안정리 해안선을 따라 안골 마을 아래까지 배가 들어와 장을 열었던 곳으로 이 장은 조선조 말엽까지 열다가 조선 후기부터는 뱃길이 편한 나진마을로 옮겨가서 나지포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청양리(淸養里)는 1963년 화동에서 나누어져 대청, 안양, 산전을 합친 마을이다.? 여천군 마을 유래지에 안양동(安養洞)을 보면 노승 한 분이 마을 앞을 지나다 "마을 이름을 안양이라 지어 부르면 자식들이 고이 자라며 부모에게 효를 다해 받들어 모시며 마음이 편하게 되리라"하여 지었다고 전한다.

안양동의 이름을 한자 풀이하여 만들어진 이야기다. 이 마을의 전해져 오는 옛 이름은 ‘안양골’이었다. 노승이 아니라도 동촌의 안쪽 양지쪽 마을이란 뜻으로 자연스럽게 지어질 이름이다.

마을 뒤의 안양산(安養山)은 옛기록에는 화산이라 하여 화양면의 이름이 생겨난 매개체로서 산자락에는 안양사 절터가 있었던 흔적이 있다.

안양마을 남쪽의 대청동(大淸洞)마을은, 대청몰이라 하였으며 마을을 이루기전 이 마을은 대청사라는 큰 절이 있어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전해오지만 이를 확인할 만한 옛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전설을 조사한 마을유래 소개에서 대청사의 동서남북에는 4곳의 암자가 있었다. 동쪽 암자는 소장리의 한도재, 서쪽은 이목리, 남쪽은 이영산의 중턱, 북쪽은 안양산에 있었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 중 안양산과 이영산의 절터는 그 흔적이 남아 있어서 구체적인 조사를 한다면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할 수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봉화산 가는 길목에 있는 산전(山田) 마을은 조선시대 송전이 있던 곳이다. 봉수대가 있는 화양면의 봉화산을 가기 위해선 이 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최근에는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고 산의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가막만과 여수반도, 화정면의 섬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찾는 이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마을에 전해지는 많은 이름들 중에 흔들바위의 다른 표현인 ‘깐닥바구’라는 이름이 퍽이나 정감있게 들렸다. 이밖에도 활처럼 휜 ‘활바구’, 방아가 돌아가는 모양으로 생긴 ‘방앳돌이’, 도랑골, 뛰어서 건너지는 ‘건내바구’ 등의 재미있는 이름들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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