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기르고 낚시하며, 정철의 형 정소
마늘 기르고 낚시하며, 정철의 형 정소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12.0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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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동동다리20]

조선 명종 즉위년(1545), 소윤 윤원형 일파가 대윤 윤임 일파를 제거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소위 을사사화다. 소윤들은 명종이 아니라 계림군이나 봉성군 가운데서 임금을 세우려고 했다는 구실로 윤임·유관·유인숙 등을 탄핵한 것이다.

그 중에는 송강 정철의 가족도 끼어 있었다. 형 정랑은 모진 매를 맞고 먼 곳으로 귀양 가던 길에 장독으로 죽었으며 아버지는 함경도 정평으로, 다시 경상도 영일로 유배되었다. 둘째인 정소는 여수에서 밭을 일구어 마늘을 심고 낚시를 하며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청사 정소는 어려서부터 영민 했다. 18세에 사마 양시에 합격하고도 모재 김안국의 문하에서 더 배웠다. 을사사화로 가족이 화를 입게 되자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소라포구의 달래도에 숨어살았다.

청사의 생활은 밭을 만들어 마늘을 심고 바다에 낚시를 드리워 고기를 잡는 일이 전부였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세속의 어떠한 것보다 더 즐거웠다.
동진 장한이 정치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난다며 벼슬을 박차고 고향 강동으로 갔던 것보다 더 즐겁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청사가 동생을 방문하려고 서울에 갔었다. 그 때 청사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바닷가에 얼마나 좋고 맛있는 것이 있어서 돌아오지 않았는가?"

하니, 청사는 "나는 섬 안에 밭을 갈고 마늘을 심었네. 새 줄기가 자라려 하면 오징어가 스스로 와서 마늘 줄기에 걸리더군. 그걸 모두 잡아서 구워 먹었지.(일설에 "밭 주변에 대나무가 쓰러져 있고 그 위에는 대합이 붙어 있어, 그것을 잘라서 반찬을 만들면 그 맛이 세상에서 기이한 것이니 무엇이 이보다 낫겠는가?"라고 하였다 한다) 이런 까닭으로 돌아오는 것을 잊었네."라고 대답했다. 「강남악부」에는 이렇게 시 한 수가 전한다.

종산포(種蒜圃)
마늘 심은 밭,
그 밭은 소라포에 있다네.
포구에는 물고기가 있으니
이름은 오징어라네.
긴 다리와 단 물도 밭 주변에서 얻고,
밭에 마늘 심어 기 줄기를 뽑았네.
마늘 밑에 물고기가 걸리니 잡기가 쉬워,
물고기에 마늘이니 막는 것도 넉넉하네.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날마다 풍족하니
어느 정승과 이 즐거움을 바꾸리.
세간에서는 아무도 모른다네, 이 깊은 즐거움을.

친구들은 이 자리에서 청사의 변해 버린 생활에 모두 은일이라 찬탄했다고 한다. 청사가 세상을 뜬 뒤에도 사림에서 의견을 내어 청사가 거쳐했던 곳에다 '청사서원'을 건립했으며 율곡 이이(1536∼1384)는 선생의 묘비에다 '참으로 모범이 될 만하다'고 썼다.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사는 것에는 은둔생활과 은일 생활이 있다. 은둔은 숨어사는 것이고 은일은 유유자적한 전원 생활이다. 청사는 숨서 살기 위하여 여수로 내려 왔지만 결국 현지에서 먹을 것을 조달하면서 자기 생활에 도취하여 은일 세계를 걸었다.

그런데 동생 정철은 형과는 반대로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다간 사람이다. 정철은 아버지를 따라 북으로 남으로 유배지를 떠돌다가 아버지가 풀려나자 함께 담양으로 내려와? 사촌 김윤재(1501∼1572)에 의해 발탁되어 본격적인 학문에 입문하다.

그 후 이곳에서 고봉 기대승, 하서 김인후, 송천 양웅정,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등으로부터 시문을 익혀 학문의 깊이를 더해간다. 벼슬길에 나서 27세부터는 동서붕당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인의 거두가 되어 사직과 등임과 귀양 등 파란 만장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시조와 가사 등 숱한 문학작품을 남긴다.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이들은 성품도 다르고 걸었던 역정도 달랐던 모양이다. 아우는 때로는 와신상담하는 은둔 생활로, 때로는 세상을 휘어잡은 주역으로, 때로는 아름다운 언어의 조련가로 살았다. 그러나 형은 마늘을 가꾸고 고기를 잡은 은일 생활로 세상을 마쳤다. 형제간에도 이렇게 이질적인 삶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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