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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 통샘이 있던 ‘머구내’를 오천이라 하였고
오동나무 통샘이 있던 ‘머구내’를 오천이라 하였고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12.0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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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야기] 화양면 - 이천리

창무에서 백초를 지나 서쪽 해안으로 나아가면 이천리의 첫 마을인 오천(梧川)마을에 이르게 된다,

오천 마을은 <머구내>라고 하는 우리말 이름의 마을로 오동나무로 만든 통나무 샘이 있어 지어진 이름인데 오동나무의 다른 이름인 머구나무가 있는 마을 이란 뜻이다.

오천은 이를 한자로 고친이름으로 오동나무 오(梧)자와 내 천(川)자를 써서 오천이라 하였다.

오천마을은 1789년의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도 오동천(梧桐川)이라 하였던 기록을 볼 수 있는데,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일제시대 까지도 오동나무 통나무로 만들어진 샘이 있어서 주변 마을에까지 좋은 물로 소문이 나 이 물로 병을 고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마을의 볕이 잘 드는 양지를 ‘양달’마을이라 하고 남쪽의 음지에 있는 마을을 ‘음달’이라고 하며 백초에서 오천으로 넘던 고개에는 오래된 모과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 ‘모개나무재’라고 하는데 도깨비가 자주 나타났었다고 하며 도깨비와 씨름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온다.

오동나무 통 샘이 있던 곳은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뜻으로 ‘온수등’이라고 하여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솟아올랐으며 피부병에 효험이 알려져 예전에는 물맞이 터처럼 목욕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한 때 ‘온수등’의 물 소식을 들은 온천개발업자가 이 물을 이용하려는 계획도 세웠다고도 하니 오천마을의 좋은 물이 세상에 크게 알려질지도 모르겠다.

오천마을에는 소호동 송소 마을로부터이어진 만리성이라는 성이 끝나는 곳으로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성을 쌓을 당시에 사람들이 썼다고 하는 흥양이나 보성이라는 글자가 성 돌에 새겨져 있어 여러 고을의 사람들이 동원되어 성을 쌓은 흔적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오천마을 남쪽에 자리한 바닷가 마을 이천리(利川里)는 이대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었다. 이대는 마을 앞에 있던 배나무가 꽃을 피우면 멀리서 바라볼 때 하얀 뭉게구름처럼 보여서 구름 운(雲) 자와 배나무 이(梨) 자를 써서 운이대(雲梨大)라고 부르게 되어 마을이름을 이대(梨大)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1789년의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는 마을 이름이 삼이대여(三利大閭) 라고 나와 있으나 운이대는 보이지 않는다.

이천리의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이대와 오천을 병합하여 이천이라 부르게 된 데서 처음 시작되어 이천과 오천 감도를 합한 법정리의 이름과 이대마을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을주변에는 해안선의 지형이 정(丁)자 모양으로 튀어나와 지어진 이름 일정고지. 이천 마을 앞 서쪽바다 운두도와의 사이에 있는 섬으로 사이에 있다는 뜻의 새섬이 한자말로 바뀐 조도, 마을 남동쪽의 산등성이 ‘꽃밭등’ 창무로 가는 옛날의 큰 산길 ‘진몰랑’, 토끼, 노루 등을 잡기 위해 몰이를 할 때 후리 그물을 쳐서 잡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후리목’, 물웅덩이의 사투리 말인 둠벙이 있던 고개 ‘둠벙수재’, ‘섭박골’ ‘산태골’ ‘신박골’ 가운데 있는 마을의 뜻인 ‘간데몰’, 땅이 움푹하게 파인 골짜기 ‘구렁꼬랑’ 중촌 남쪽의 산등성이 ‘따박몰랑’ 등의 이름이 전해온다.

이천을 지나서 만나는 감도리(坎道里)는 몇 해 전부터 맛있는 가을 전어회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해변 마을이다. 전해오는 옛 이름은 <감디>라 하였는데 `<감디>는 `‘감은 디’의 뜻으로 `‘감’은 `물이나 길이 감아 도는 곳`을 뜻하며 디는 ‘~하는 곳’의 뜻으로 쓰이는 우리지방의 사투리로, 마을 앞 해안으로 바닷물이 감아 도는 곳이라 해서 지어진 땅이름이다.

감도 마을은 바다에 인접한 다양한 형태의 해안이 많아 재미있는 해변의 이름도 많다. 물에 항상 잠겨있다는 해변 ‘무장기미’ 겨울에도 따뜻한 ‘따신기미’, 굵은 자갈이 많은 ‘독살기미’ 끝이란 뜻이 포함된 ‘잇낭기미’와 ‘이막금이’ 왼쪽으로 구부러진 해안 ‘잉기미’ 등의 재미있는 해안 이름은 설명이 없으면 그 뜻을 알기가 어렵다.

감도 마을에는 이밖에도 마을 입구의 ‘솔정자’와 송아지 목처럼 생겼다는 ‘쇠야지 목’을 비롯해서 ‘대팽이’ ‘캐바구날 ‘온돌머리’ 등의 땅이름이 전해오는데 이 중 온돌머리는 옛날 온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구들돌’을 캐내던 곳을 이르며 온돌머리 가까이에 있는 고려장터는 여러 사람이 발을 구르면 쿵쿵 울리는 지역이 있어 지어진 이름으로 발아래 고려장을 하였던 동굴이 있어 소리가 난다하여 고려장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는데 혼자 답사하며 아무리 발을 굴려도 소리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여서 언제 시간이 나면 여러 사람이 함께 굴러볼 생각이다. 고려장을 지내었던 가난한 시대 슬픈 역사의 흔적을 보는 듯 해 서글픈 곳이다.

따신기미 해안의 끄트머리에는 바위의 모양이 용의 발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용발따죽’이라는 곳이 있는데 양파껍질처럼 작은 바위가 박리되면서 만들어진 용 발바닥 모양의 형상들이 금방이라도 물가로 걸어 나올 듯 신비롭다. 일제 때 만들었다는 감도마을의 노래에도 ‘따신기미 용발따죽 정기를 받자’라는 대목이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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