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병만 남아도 한번 묻혔는데 안 할 수 있냐 "
"골병만 남아도 한번 묻혔는데 안 할 수 있냐 "
  • 박성태 기자
  • 승인 2004.11.30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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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과 30년 살고지고 박영수씨의 배달 인생 이야기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인 안도현은 자신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을 통해 물질만능세태를 이렇게 노래했다. 뜨겁게 타 올라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줌의 재가되고 마는 연탄 한 장. 이 노래만큼 30여 년을 뜨거운 연탄을 품고 살아 온 사람이 있다. 바로 박영수(46)씨다. 소라복지관 인근에서 합동연탄을 운영하고 있는 그로부터 22개 구멍과 3.75kg의 무게를 가진 연탄과 인생의 얘기를 들어봤다.

언제부터 연탄배달을 시작했나.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아버님을 따라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이 된 것 같다. 남은 것은 골병뿐인데 한번 묻혀 놓으니까 할 수 없이 한다. 안하면 욕먹으니까.

30년 전 당시에는 어떻게 배달을 했는지 궁금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별표연탄을 배달하다 동창연탄으로 바뀌고 지금은 합동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연탄공장도 5개에서 지금은 제일,합동 두 곳뿐인데, 옛날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어머님과 함께 덕양에서 리어카를 끌고 여수역까지 가서 연탄을 받아와 날랐다. 그때만 하더라도 연탄이 대접을 받았다. 장사집이나 부자집같은 곳에서만 땠다. 리어카 하나에 100백장을 싣고 오면 5000원을 벌었다. 그 당시로서는 큰 돈벌이였다.

현재 연탄값은 얼마인가.

30년전 17원하던 것이 10원씩 올라 280원이 됐다. 85년도에 면허증을 따 2톤짜리 포터를 구입해 배달을 했다. 한차에 보통 1200백장씩 실었는데 하루에 4차 정도 배달을 했으니까 웬만한 노가다보다 났었다. 90년도 초까지도 벌교까지 배달을 하면서 하루 20만원 벌이를 했다. 그러나 '먹고 노느라' 다 써버렸다. 여자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덕양지역은 몇 가구나 연탄을 사용하고 있나.

대충 14곳 정도나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높은 곳이나 궃은 데는 배달 엄두를 못 낸다. 지금은 한달에 50만원 정도 벌이를 겨우 한다. 지게질도 어렵고 몇 푼 벌자고 몸을 죽일 수는 없지 않냐. 연탄 값은 280원인데 보통 배달을 시키면 400-700원까지 나온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독거노인같은 분들은 연탄조차 때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자양반이 꼭 알아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글고 몇 년전부터 정부가 연탄보일러를 지원해 줘 서민들이 연탄을 쓸 수 있었는데 요것도 중간에서 누가 새치기해 철물점에 갖다 팔아 묵고 있다. 작년만 해도 5만원하던 것이 철물점에서 10만원에 팔고 있다. 연탄공장에 연탄보일러를 신청해도 없다고 한다. 죽일 놈들이 아무리 돌라 묵을 것이 없다고 연탄보일러까지 돌라 묵는가.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지게질을 하도 많이 해 허리가 다 망가졌다. 그래서 다른 일은 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겨울에 연탄을 만지면 손 트는 일은 없다. 아버님께서 집 한 채 장만하는 게 소원이셨는데 다행히도 내 집을 장만해 그런 대로 끼니를 잇고 있다. 초등학교만 나와 연탄만 보고 살아 온 내가 자랑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저 욕 안 먹을라고 내 일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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