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기와 놀아 난 이 충무공의 속 뜻
관기와 놀아 난 이 충무공의 속 뜻
  • 박태환 기자
  • 승인 2004.11.25 09: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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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동동다리 19]

우리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만큼 위대한 인물은 드물다.
충무공은 선조22년(1589년) 전라순찰사 이광(1541-1607)에게 발탁되어 조방장, 선전관, 정읍현감을 거치고 진도 군수를 역임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591년 여수와 인연을 맺는다.

그의 뛰어난 지력과 백의종군은 길이 우리 역사의 교훈으로 남아있는데 그 위대한 인물이 전쟁 중에 관기와 놀아났다고?

원래, 좌수영 영내에는 객사로 취의청이 있었다.
이순신장군은 1591년 전라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해 와서 왜구들의 침략에 대비해 밤낮으로 훈련을 했다. 그러던 중 1592년, 16만의 왜적들이 부산포을 침범해 왔다. 임진왜란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 소식을 듣고도 태평이었다. 연3일 동안이나 취의정에서 관기들과 놀아나기만 한 것이었다. 부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난리 소식을 듣고 이웃 녹도만호 정운(1543-1592)장군이 달려 왔다. 이순신 장군은 정말로 그러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니 기가찰 지경이었다.

부하의 신분이었지만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정 장군은 정색을 하며 ‘이래서는 안될 일’이라 다짜고짜로 대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그 때야 “짐짓 부하들의 태도를 알아보려고 일부러 그랬는데 아무도 나를 꾸짖지 않았다. 정 장군이야말로 장수 중의 장수다.”며 크게 기뻐하고 곧바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영문도 몰랐던 다른 장수들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1592년 5월 4일, 모든 준비를 마친 이순신장군은 경상도 해역으로 출진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여도만호 김옥천은 그만 겁에 질려 달아나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은 도망하는 그를 추격하여 군사들이 보는앞에서 대번에 처형을 해 버렸다. 그리고는 군사들과 함께 경상도 한산도 앞바다로 출전했다.

교전을 했다하면 아군의 승리였다. 거북선으로 대첩도 거두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은 “생각컨대,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라.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도 없어질 것이다”며 전라도와 경상도를 11번이나 오가며 승기를 잡는다. 아마 교전 중에는 한번도 관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5월 4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 장군이 첫 출전하는 날이요, 도망간 장수 김옥천의 목이 달아난 날이다. 이날 진남제가 열린다.
37년을 이어 오고 있다. 뜻 있는 일이다. 다만, 해를 거듭할 수록 시민들의 호응이 적다고 하니 그방이나 내용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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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dd 2005-06-27 16: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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