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동동다리] 만인 공덕 위해 심은 오리정 느티나무
[아이동동다리] 만인 공덕 위해 심은 오리정 느티나무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11.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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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관청에서는 한양을 향해 5리가 되는 지점에 정자를 세우고 나무를 심었다. 성춘향과 이도령이 이별한 오리정도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여수에도 오리정이 있었다. 오림동 큰길가에 수령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정답게 서 있는 곳이 수영으로부터 5리가 되는 그 곳이다.

옛날, 이곳에 젊은 부부가 3칸 토막집을 짓고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남편은 등과를 목표로 글공부에 전념을 했고 부인은 남편의 글 바라지를 위해 떡장수로 나섰다. 그래도 곤궁한 생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알 수 없는 중한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부인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남편을 돌보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남편의 병세는 악화되어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는 남편이 부인의 손을 잡고 유언을 했다.

"결혼한 지 10년 동안 남편 노릇 한번도 못하고 당신 고생만 시켰으니 내 죄가 너무 큽니다. 이생에서는 못 다한 인연을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 이루어 봅시다"
남편은 말을 마친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남편의 장례를 정성스럽게 치른 뒤였다. 밤이 되면 죽은 남편의 가냘픈 울음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오곤 했다. 문을 열고 나가 보면 들리지 않고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오면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이었다.

부인은 남편 잃은 한없는 서글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길 가던 노승이 그 현장을 목격하고 부인의 생명을 구한 후에 부인에게 "당신의 남편은 한 많은 원귀가 되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고 있으니 그 영혼을 위해 만인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 극락을 가게 됩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부인은 남편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만인 공덕을 어떻게 할까 골몰했다. 위낙 곤궁하던 터라 절에 시주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생각 끝에 나무를 심기로 했다. 부인은 자기가 살던 집터에다 느티나무 한 쌍을 심었다. 이 나무는 크게 자라 여수 오리목이 되었다고 한다.

느티나무 이야기가 나왔으니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마녀목 이야기를 곁들어야겠다. 조선 숙종 때, 군마를 기르는 이곳에 마병이 창궐했다. 마부 이씨의 무남독녀 복녀는 마구간에서 앞다리가 부러진 점박이 말과 함께 생활을 했다. 그녀는 새벽마다 천제단에 올라가 천지신명께 두손 모아 말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하곤 했다.

어느 날 꿈이었다. 산신이 나타나더니 제단 옆 옹달샘에 가서 가재 세 마리를 잡아서 생즙을 내어 그 말에게 먹이면 반드시 효험이 있을 것이라 일러 주고는 사라지는 게 아닌가? 복녀는 꿈대로 해 보았다. 과연 말이 나았다. 그 후부터 복녀와 점박이 말은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붙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화동에 주재하는 감목관이 대장군이 탈 말로 점박이를 찜했다. 복녀와 점박이 말은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했다. 둘은 서로 끌어안으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도 울었다.

점박이 말과 헤어진 복녀는 애마와 같이 놀던 자리에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 그리고는 병이 나서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그로부터 1년 후 어느 날 새벽, 복녀의 아버지가 목장 순시 중에 딸이 심어 놓은 느티나무 곁에 상처투성이인 채로 숨져 있는 말 한 필을 발견했다.

말 등에는 호피 안장이 놓여 있었고 머리에는 호사스런 장식들이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점박이 말이었다. 아버지는 복녀에게 점박이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러 갔다. 그러나 딸도 이미 숨을 거두고 난 뒤였다.

딸과 점박이 말이같은 시각에 숨을 거둔 것을 안 아버지는 둘이 영원히 함께 지낼 수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 나란히 묻어 주었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마녀목'이라 부르게 되었고 남의 은혜에 감사 할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점박이 말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속담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십리절반 오리나무'라는 옛 노랫말이 있다. 옛날에는 오리정에 오리나무를 심었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오리나무는 오리마다 심었던 지표목으로서 이정표였던 셈이다. 또, 술을 물이 되게 하는 약효가 있어 간장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산에 땔감을 구하러 갈 때도 꼭 술병을 가지고 다닌 어떤 애주가가 어느 날은 병마개를 잃어버리고는 오리나무 잎으로 마개를 만들어 두었는데 나중에 술을 마시려고 보니 그만 술이 물이 되어 벼렸다는 옛 이야기는 그 약효에서 연유되었을 법하다. 이밖에 오리나무는 지팡이나 나막신, 그릇 같은 생필품을 만들거나 다갈색 염료를 얻을 수 있다고도 한다.

옛날에는 오리나무를 집 근처에 즐겨 심었다고 한다. 요즈음은 그 사촌격인 물오리나무나 사방오리나무는 흔히 볼 수 있어도 진짜는 귀하다니, 그 다양한 쓰임새 때문에 수난을 당한 것일까?

여수 오리정에는 오리나무 대신 오래된 느티나무가 시민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 나무도 우리 마음속에는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나무도 우리 마음속에는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산나무로 제일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당산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점지한다고도 하고 이 나무가 밤에 빛을 발하면 동네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도 한다.

나쁜 일이 생기면 울기 때문에 운나무라는 별칭도 있다. 봄에 잎을 틔운 모양새로 풍년을 점치기도 한다.
느티나무 열매는 눈에 좋고 흰머리가 검어지는 약효도 있다 해서 장수 나무로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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